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7.28 18:28 수정 : 2013.07.28 18:28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베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또 한 번의 압승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다수의 일본 전문가들은 자민당의 이번 승리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의 표현일 뿐, 일본 국민의 전반적인 우경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는 모습이다.

일본 경제에 상당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아베에 비판적인 일본 지식인들도 동의하고 있다. 20년에 걸친 경기침체는 경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현상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지금 일본의 20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경기호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이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늘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고, 열심히 살아도 절호의 기회 같은 건 찾아올 리 없고, 그냥 내 한 몸 큰 무리 없이 조용히 건사하다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고가 각인된다. 심장이 멈춘 환자를 깨우기 위해 전기충격기를 사용하듯, 장기간 혼수상태에 빠진 일본을 깨우기 위한 충격이라면 그것이 아베노믹스든 무엇이든 우선 쓸 수밖에 없다는 게 상당수 일본인들의 절박한 생각이다.

이처럼 일본의 우경화는 경제를 숙주 삼아 기생하고 있지만, 여기에 몇 가지가 더해진다. 하나는 일본 민주당의 무능이다. 민주당에 주어졌던 짧은 집권기간은 준비되지 않은 집권세력의 무능을 증명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이었고, 일본인들은 이제 자민당에 투표하든가 그게 싫으면 기권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둘째는 노동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약자의 배제이다. 일본 노동자 셋에 한 명은 비정규직이고 이들은 젊은층과 여성에 몰려 있다. 이들 중 75%는 연간 200만엔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데,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력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자는 정치적으로도 배제된다는 것이 여러 선진자본주의의 공통된 경험이다. 셋째는 유권자 고령화이다. 고령화는 일본이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책적·정치적 선택을 상당 부분 제약하는 변수가 되었다.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200%에 이르는 상황에서 세제와 연금의 개혁이 시급하지만 현 시스템의 일방적 수혜자인 고령층이 어느새 유권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다가 막판에 소비세 인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민주당 정권이 곧바로 선거에 참패한 것이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경기침체라는 공통의 난관, 무능한 야당, 노동시장을 통한 약자의 배제, 변화에 저항하는 인구구조라는 조건들이 미디어의 선정성과 만나면 정치는 민생과 상관없는 퍼포먼스가 된다. 이른바 ‘극장정치’다. 정치는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극장정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표성이 아니라 시청률이다. 극장정치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는 유권자층이 오히려 드라마에 몰입하듯 정치를 소비한다. 정치 경험이 전무하거나, 젊거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인물을 상대 정파의 거물급 후보 지역구에 공천하는 ‘자객공천’은 그 백미이다. 상식을 초월하는 극우 발언은 드라마의 시청률을 올리는 막장 요소다.

일본 정치 우경화의 뿌리들을 보면서 한국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성장률 하락과 분단이라는 공통의 난관, 무능한 야당, 노동시장을 통한 약자의 배제, 지난 대선 때 확실하게 그 정치적 의미가 증명된 바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의 진전, 종편으로 완성된 미디어의 선정성 등 우리는 거의 모든 조건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지난해 총선에서는 자객공천까지 목도할 수 있었다. 이웃나라 일본의 변화를 보면서 마냥 그들의 우경화만 걱정할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