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1 18:58
수정 : 2013.08.0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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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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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실무협상이 결렬되었다. 문득 60년 전이 떠올랐다. 휴전협상 말이다. 1951년 3월쯤 38선 근처에서 전선이 교착되었다. 휴전협상은 그해 7월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왜 2년이나 협상이 계속되었을까? 영화 <고지전>에 나오는 대사처럼, 너무 오래되어 싸우는 이유도 잊어버릴 만큼 전쟁에 몰두한 이유가 무엇인가? 1953년 7월27일 그날 휴전협정 서명은 오전 10시에 했는데, 왜 그날 밤 10시까지 포성이 멈추지 않았을까? 서명 이후 12시간의 발효시점까지 그렇게 전쟁을 계속한 이유가 무엇일까? 휴전협상은 협상이 아니었다. 또다른 전쟁이었다.
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 남북관계를 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전쟁의 시각과 협상의 시각이다. 협상은 전쟁과 다르다. 협상은 상대를 인정한다. 그리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 얻기 위해서, 양보하는 것이 협상이다. 그러나 전쟁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는 절멸의 대상일 뿐이다. 북한 붕괴론처럼. 그것은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다만 전쟁의 길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희망적 사고다. 전쟁의 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협상을 퍼주기라고 주장한다. 주고받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실무협상 과정을 보면, 우리 정부는 이것을 협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표를 갑자기 바꾼 것도 그렇고, 3차 회담 이후부터는 수정안 자체를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이 계속해서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우리 정부는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격이 맞지 않는다고 회담 자체를 깨버린 자세로, 색깔이 수상하다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일념으로, 양보는 곧 허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원칙을 강조한다. 해석해보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뜻이다.
영화 <고지전>의 대사처럼, 도대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는 왜 개성공단의 기업인들을 고려하지 않는가? 더는 공장을 세워 둘 수가 없다고, 이제 더 시간이 지나면 정말 재가동하기 어렵다고, 저토록 피를 토하며 아우성을 치는 기업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회담인가? 정부가 강조하는 원칙,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념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이렇게 개성공단이 멈추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 모든 대화가, 교류가, 협력이 그야말로 완전히 중단되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존의 논리가 아니라, 협상의 논리가 아니라, 전쟁의 논리만 남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60년 전처럼, 전쟁은 잠시 중단하지만, 전쟁 같은 관계를 추구해야만 하는가? 그러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시대착오의 기회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미얀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미얀마 정부는 현재 카친 반군을 포함해서 20여개의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다차원적인 휴전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만난 관료들은 평화가 없는 민주주의는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전쟁이 아니라, 협상의 길을 선택했다. 대통령실의 장관급 인사에게 물었다. 협상에서 반군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 무엇인가? 그는 동등함이라고 대답했다. 협상 상대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였다. 정부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런 자세로 만나니, 당연히 신뢰가 쌓였다. 이제는 유엔 등의 중재가 없어도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분단국가에서 온 우리에게 그는 말했다. 적과 화해하고 싶다면 만나라.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누구나 알 수 있는 협상의 길이다. 또한 그것이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시대의 요구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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