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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4 18:49 수정 : 2013.08.05 08:50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어당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별명이다. 어수룩해 보여도 당수(唐手·가라테)가 팔 단이라는 말이다. 보기와는 달리 당찬 면모를 가졌다는 얘기다. 누군가에 대해 딱 부러진 장점이 없을 때 으레 착하다고 하는 것처럼 그냥 하는 소리일까. 그렇지 않다. 원내대표 시절 당내의 반발, 보수언론의 강압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는 강단을 떠올려보면 어당팔이라는 말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최근 그의 모습은 어당팔이란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하다.

지금 집권 여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치라기보다 마치 결투하는 것 같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산다는 식의 사생결단이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가운데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다. 국정조사라는 제도는 입법부가 사법부를 견제하는 장치인데, 국정원 국정조사를 대하는 일부 여당 의원의 모습은 못나도 너무 못났다. 정치 9단이란 표현에 빗대자면 가히 몽니 10단의 경지다.

정치가 상대 부정의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할 때 그 정치는 역치(逆治)라고 하는 게 옳다. 이를 두고 정치의 실종이라 칭하기도 한다. 정치 실종, 즉 역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당장은 국외자로 남아 무관심한 듯 보여도 피해 당사자인 국민은 조용히 그러나 엄중히 그 책임을 묻는다. 예컨대 1994년 중간선거에서 이긴 미국 공화당의 깅그리치는 진격의 거인처럼 대통령 클린턴에게 ‘무조건 항복’을 밀어붙이다 결국 자신이 무너지고 말았다.

교훈은 또 있다. 깅그리치가 일군의 강경파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인 결과 미국 공화당은 1996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잘 차려진 밥상을 발로 차버린 꼴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강경파의 책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중에 대선 후보가 되는 밥 돌을 비롯한 온건파가 강경파의 독주를 견제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것도 몰락과 패배의 한 원인이었다. 타협을 지향하는 온건파가 진즉 나서서 국면을 수습하고 정치를 복원했더라면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새누리당에는 다양한 그룹이 존재한다. 황우여 대표와 같은 온건파도 있고,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개혁파도 있다. 또 안보 문제를 색깔론과는 다르게 접근하는 안보 소장파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강경파의 목소리만 득세하고 있다. 당 대표는 뒷방 영감처럼 그 존재감마저 사라져버렸다. 오죽하면 같은 당 의원이 “당 대표 입지가 좁아서 큰일이다. 사실 강경파에 많이 밀린다”고 하랴.

당 대표가 대표답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온건파, 합리적 보수의 상징인 황우여 대표가 강경파에 밀려 리더십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당내 역학이 더 큰 문제다. 직위로 따지면 한참 밑인 인물이 국면 관리를 주도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부터 당 대표로선 수모 아닌가. 게다가 당내 강경파의 역치를 방치하면 국정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황 대표가 적극 나서야 한다. 대표답게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고, 통 크게 영수회담을 성사시키는 한편 여야 대표 회담도 열어 실종된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2009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황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야당 의원을 먼저 존중할 줄 알아야 여당도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야당 의원들 역시 국민이 뽑아준 대표인 만큼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 타협하는 자세가 화합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 말을 실천에 옮길 때 황우여 리더십도 살아나고, 국회선진화법처럼 우리 정치의 질도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시민 저항이 확산되고, 야당이 촛불을 들고 나선 지금이 바로 황 대표가 정치 복원의 깃발을 들 때다. 시간이 없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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