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5 18:48
수정 : 2013.08.0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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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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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가시고기 수컷은 번식기가 되면 아랫배가 빨갛게 된다. 자기 영역을 지키다가 다른 수컷이 영역에 침범하면 맹렬하게 공격한다. 동물행동학자 니코 틴베르헌은 여러 나무 모형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아랫배의 빨간색이 수컷의 공격 행동을 일으키는 자극임을 알아냈다. 어떤 물체가 물고기를 하나도 안 닮았어도 빨갛기만 하면 수컷들은 광분한다. 틴베르헌은 실험실 수조에서 키우던 큰가시고기 수컷들이 바깥에 빨간 우체국 트럭이 지나가자 일제히 창 쪽으로 몰려들어 으르렁댔다고 술회했다. 그런가 하면 검은머리물떼새 어미에게 알을 품는 행동을 일으키는 자극은 알의 크기다. 어미새에게 그가 직접 낳은 알과 타조의 거대한 알을 함께 줘 보시라. 어미새는 막무가내로 타조 알 위에 올라타서 어떻게든 품으려 애쓴다.
종종 동물들은 실제 자극보다 훨씬 더 과장된 자극에 강하게 끌린다. 틴베르헌은 이를 초정상 자극이라 했다. 검은머리물떼새가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새가 진화한 환경에서 타조 알처럼 거대한 알은 애초에 없었다. “큰 알을 선호하되 길이가 6㎝가 넘는 알은 너무 크니 피하라”고 복잡하게 잔소리하는 유전자보다 “무조건 큰 알을 선호하라”고 단순하게 이르는 유전자가 자연선택되었을 것이다.
초정상 자극은 동물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설명하는 데만 유용한 건 아니다. 수백만년 동안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다 난데없이 현대 산업사회에 내던져진 우리 인간은 온통 초정상 자극에 둘러싸여 있다. 어떤 과일보다 더 달콤한 초콜릿, 어떤 동네 청년보다 더 매력적인 연예인, 어떤 실화보다 더 극적인 영화는 종종 우리로 하여금 잘못된, 곧 생존과 번식에 해로운 선택을 하게 한다.
진화심리학자 더글러스 켄릭은 텔레비전·인터넷 등 대중매체를 도배하는 연예인들의 매혹적인 외모가 실제 연인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였다. 한 남성 집단엔 김태희·수지 같은 여성 스타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다른 남성 집단엔 평범한 외모의 여성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참여자들이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 물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에게도 원빈·송중기 같은 남성 스타들 혹은 일반 남성들의 사진을 보여준 다음 현재 연애하고 있는 남자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다.
성차는 뚜렷했다. 예쁜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을 감상한 남성들은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이 일반 여성들의 사진을 본 남성들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반면에 여성들이 실제 남자친구에게 품는 사랑은 잘생긴 남성 연예인의 사진들을 보건 평범한 남성들의 사진들을 보건 간에 차이가 없었다. 요컨대 화장발과 조명발에 힘입은 여성 연예인들의 빛나는 외모가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남성은 정작 사랑해야 할 연인이나 아내에게 만족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켄릭의 연구가 내면의 성숙을 중시하는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그저 예쁘다면 정신줄을 놓는 팔푼이임을 입증한다고 생각하시는가? 조금 더 들어보길 바란다. 후속 연구에서 켄릭은 참여자들에게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은 혹은 낮은 이성의 사진들을 보여준 다음에 이것이 실제 애인에 대한 사랑에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했다. 남성 참여자들은 애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재벌 2세나 고소득 전문직 남성들을 본 여성들은 실제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이 현저히 낮아졌다.
대중매체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들이 넘쳐난다. 당장은 나에게 즐거울지 몰라도, 내가 진정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초정상 자극임을 기억하자.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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