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20 18:32
수정 : 2013.08.2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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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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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대통령 때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이 무대 아래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제이컵 루를 소개했다. 오바마 정부에서의 현직 재무장관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 타임스> 기자가 중동 ‘아랍의 봄’ 현장을 누비고 돌아온 취재 후기를 중동의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인 <시비에스>(CBS) 피디와 함께 앉아 나눈다.
총격을 받고 생존해 미국의 영웅이자 총기 문제의 아이콘이 된 민주당 소속의 개브리엘 기퍼즈 전 하원의원이 서서 기조연설을 한 바로 그 연단에, 공화당 원내대표인 에릭 캔터가 서서 정치 현안을 이야기한다. 딕 코스톨로 트위터 시이오(CEO) 같은 벤처기업 대표자도, 리처드 브랜슨 버진항공 회장 같은 전통산업에서의 혁신가들도 청중 앞에 서서 발표하고 질문을 받는다.
6월 말 ‘애스펀 아이디어 축제’에 참석해서 목격한 장면들이다.
미국 콜로라도 애스펀에서 해마다 열리는 이 축제는 전문가와 현장 실천가들이 세상을 바꿀 만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학자·기업가·시민운동가·정치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영향력 있는 연사 350여명과 청중 2000여명이 참석한다.
그런데 내 눈에 가장 띄는 장면은 서로 다른 정당, 서로 다른 영역, 서로 다른 언론사에 속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미국은 한국 못지않게 당파적인 사회다. 사회 전반이 보수와 진보,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으로 갈려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연출이 가능했을까?
이 행사 주최자인 애스펀연구소를 들여다보면 그 비결을 알 수 있다. 애스펀연구소는 ‘시민성’(civility)을 앞세워 운영되고 있는 미국 싱크탱크다. 1950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 가치 아래 사람들을 모았고, 이를 기반으로 삼아 영향력을 확대했다.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이 단어는 ‘예의’ 또는 ‘양식’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 단어다. 같이 토론할 만한 수준의 예의바름, 특히 언어 사용의 예의를 지키자는 이야기다.
물론 여러 장치가 있다. <스티브 잡스> 전기 작가이자 전 <타임> 편집장인 월터 아이작슨처럼 두루 존경받는 이가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연구소의 많은 연구결과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몇년 동안에 걸친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합의과정을 거쳐 발표된다. 공개 대화도 많이 열지만, 의견이 다른 정책결정자와 전문가 사이의 비공개 대화도 적극적으로 열어 밀도 있는 의견교환과 합의를 끌어낸다.
그러고 보니 대중이 만드는 온라인 기반 사전 ‘위키피디아’도 편집 원칙으로 ‘시민성’을 내세우고 있다. 위키피디아 내용은 한 사람이 써 놓은 글을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으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작업해야 한다. 그래서 예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문득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정조사장에 나와 증인 선서를 하지 않겠다던 이들이 떠오른다. 어떤 장소에서 하든 사람의 말은 거짓이 아니어야 한다. 이건 법 이전에 유치원에서 모두 마쳤어야 할 ‘예의’에 대한 훈련이다. 그것조차 부정하는 무례함만 확인하고 국정조사는 끝났다. 한국의 스마트폰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지만, 한국인의 시민성은 아직도 유치원을 가야 할 수준인 것일까.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시민성 또는 예의를 들었다. 한국에는 전통적 유교문화를 대체할 시민성이 확립되지 않아 강자독식 논리만 남았다는 인식이다.
예의는 사소하지 않다. 어쩌면 문명화된 사회의 척도다. 복지국가로 진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도 어쩌면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 사이에는 정직한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사회에서 복지국가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원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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