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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1 18:58 수정 : 2013.08.21 18:58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해마다 여름이면 팔십여명의 공부방 식구들이 함께 캠핑을 간다. 3박4일 동안 우리가 가장 신경을 쓰는 일은 먹는 일이다. 공부방 아이들에게 평화가 뭐냐고 물으면 “캠핑”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평화의 핵심은 ‘밥’이다. 화려한 식단은 아니지만 그 밥을 먹을 이들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지은 밥, 세살배기 아기부터 쉰이 넘은 이모삼촌들까지 다 함께 나눠 먹는 밥이다.

캠핑의 어떤 프로그램보다 아이들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하는 것은 그 밥상에 담긴 존중과 평등이다. 솥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눈칫밥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먹는 것에 차별받으면 그 상처가 깊이 남는다.

경기도가 무상급식 예산을 전면 삭감했단다. 세수부족으로 인한 재정악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드러나는 정황을 보면 세수부족은 핑계일 뿐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모양이다. 예산 타령을 하면서 전시성 행정에 들어갈 돈은 그대로 두고 아이들의 밥상을 뺏겠다는 발상은 참 치졸하다.

무상급식 이전에는 사립이냐 공립이냐, 혹은 직영이냐 위탁이냐에 따라 급식의 질이 천차만별이었다. 급식 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또래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무상급식으로 그런 문제점들이 해소되었다. 그런데 그 무상급식을 포기한단다.

경기도와 꼭 닮은 꼴이 있다. 대기업과 고소득 금융자산가, 부동산 수익에 대한 세금은 그대로 둔 채 근로소득세만 올리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복지 축소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이유 중 하나는 복지공약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다. 증세 없는 복지가 어떻게 가능할지 의심하던 사람들조차 복지의 확대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스페인으로 이민 간 한 선배는 피아노 방문교습을 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스페인의 청년실업이 49%를 육박하는데도 취업에 성공한 아들들은 월급의 반을 세금으로 낸다. 그러나 그 세금이 아깝지 않단다. 세 식구가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뒷배가 돼준 사회복지제도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두 아이가 대학원과 치의대를 졸업하는 동안 각각 낸 등록금은 우리나라 대학의 1년치 등록금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복지혜택을 갚을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낸 세금이 정당하게 쓰이지 않는 불쾌한 경험을 해왔다. 세금을 불법으로 유용하여 제 주머니를 불린 권력자들과 고위공무원들을 수도 없이 봤고, 4대강, 아라뱃길 따위의 토목공사나 전시행정으로 세금이 버려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8월 초, 인천의 서민지역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에서 인형극 워크숍을 진행했다. 노인복지관은 일주일 내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항상 북적거렸다. 특히 점심 식권을 나눠주는 오전 10시부터 점심식사 시간까지는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워크숍 첫날, 점심을 먹으러 지하 식당에 갔다. 식권을 들고 줄을 선 노인들이 긴 기다림 끝에 받아든 식판. 그 식판에 담긴 복지는 무례하고 비정했다. 노인복지는 시혜나 적선이 아니다. 나는 10년, 20년 뒤 결코 그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다.

우리도 무상급식, 무상보육, 그리고 의료보험을 통해 미미하나마 보편적 복지의 맛을 보았다. 누구나 그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길 원한다. 또한 정직한 분배의 원칙만 지켜준다면 내 몫을 나눌 준비도 되어 있다. 내가 번 만큼 세금을 내듯 많이 벌고 많이 가진 이들이 더 많이 내면 된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얻은 혜택만큼 내놓으면 된다. 정답은 늘 명쾌하고 분명하다. 그런데도 왜 대통령과 여당은 헛다리만 긁고 있는 걸까?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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