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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2 19:01 수정 : 2013.08.22 19:01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며칠 전 바이칼 호수에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68시간이 걸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바이칼의 심장 알혼섬으로 갔다. 그곳에서 청년을 만났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대학생이다. 호숫가 그의 텐트 옆에 불을 피우고 얘기를 나누었다. 두 달 전 길을 떠난 그는 중앙아시아를 지나 신장위구르로 들어와 상하이까지 중국을 횡단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태산에 오르고, 칭다오, 창춘, 투먼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갔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여행의 교통수단이다. 그 청년은 대부분 남의 차를 얻어 타고 그곳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기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 그의 젊음이 부러웠다. 그의 용기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했다.

그 청년이 말했다. 북한을 지나 서울을 방문하고 싶었다고.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안타까웠다. 우크라이나 청년이 걸어서 갈 수 없는 곳, 한반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대륙 횡단 철도를 타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을 지나,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잃어버린 땅을 말했다. 그러나 나는 잃어버린 상상력을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섬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는 섬사람처럼 생각한다.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38선 때문이다. 분단은 머릿속에도 있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월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었다. 우크라이나 청년처럼 걷다가 남의 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못한다.

한-러 비자면제협정이 곧 체결될 예정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러 관계가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관광객이 늘어나고 경제협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과연 그럴까? 물론 북한이라는 다리를 우회하여 북방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한·러 양국의 핵심 협력사업인 철도나 가스는 반드시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은 한-러 관계는 말만 요란했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이명박 정부가 이미 증명했다.

우리의 미래는 북방에 있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 대륙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그러나 미래의 문을 닫아걸고 지속적으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분단을 정당화하고 기득권 유지의 명분으로 활용한다. 국내정치로만 남북관계를 본다. 역사는 결코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를 기억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좀더 큰 시각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개성공단 재개는 잘한 일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의 관계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이해했으면 한다. 그러나 생각의 지평을 더 넓혀야 한다. 한국이라는 기차의 성장엔진이 멈추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1년부터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1% 미만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래를 향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끊고 중국의 동북경제권과 러시아 극동경제권에 다가갈 수 있는가? 개성은 북방으로 향하는 문이다. 금강산 육로와 철로 역시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가는 길이다. 그런 생각으로 남북관계를 봐야 한다.

바이칼 호수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교통수단은 다양했다. 폴란드에서 온 가족은 비행기로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왔고, 예카테린부르크의 청소년들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왔고, 중국의 회사원들은 몽골리안 횡단 철도를 타고 왔다. 이 땅의 젊은 청춘들에게 권한다. 대륙의 길 위에서 자신의 인생과 조국의 미래를 생각해보기를. 그리고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바란다. 대륙을 향한 상상력을 허하라.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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