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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5 19:11 수정 : 2013.08.25 19:11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언제부턴가 힘 있는 사람에게 왕(王) 자를 붙이곤 한다. 지난 정부에선 박영준이란 사람이 왕차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현 정부에선 한동안 왕 자 인물이 없었다. 대통령의 입이라는 이정현 홍보수석을 두고 실세라고 규정하면서도 왕수석이란 표현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왕 자를 붙이는 인물이 등장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그를 두고 왕실장이란 말을 한다. 그 왕실장이 이전의 왕 자 실세들처럼 뒤끝이 나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기춘은 한국 현대사를 주도한 보수 엘리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서울법대에 검사 출신이니 군사독재 시절의 인사 시스템을 뜻하는 육법당의 ‘법’에 속한다. 그뿐이랴. 그는 한국 정치사를 쓴다면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 사건에 관여했다. 세 가지 사건이란 유신, 초원복집 사건,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다. 이 사건 모두에서 왕실장은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유신 때는 그 헌법을 기초하는 역할을 맡았고, 관권 선거를 협의한 초원복집 사건 때는 좌장의 역할을 자임했고, 탄핵 때는 법사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을 리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시대를 얘기하면서 정치 현장을 떠난 지 5년이 넘은 ‘낡은’ 인물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하니 직무 적합성을 떠나 많은 국민들이 뜨악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으로서야 그를 기용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발탁했으리라. 생각해 보면, 창조경제를 표방하면서 미래를 얘기하고 그걸 감당할 적임자로 내세운 인물이 검증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가버린 예도 있다. 그러니 참신함보다는 노회함을 기준으로 인사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인사든 정책이든 앞으로 가야 하는데, 뜬금없이 뒤로 가면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했든 안 했든 꺼림칙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다.

얼마 전 청와대가 앞장서서 야당 국회의원의 귀태 발언을 집중 성토한 적이 있다. 귀태 발언을 한 의원은 당직을 사퇴하고, 당 대표는 사과까지 했다. 막말은 질타하던 대통령이 과거 막말로 구설을 탔던 인물을 마치 보란듯이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그 비서실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사이코라고 단정하는 막말을 퍼부었고, 2002년 대선이 끝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엔 대통령 하야 운운하며 대선 불복에 나섰다.

그렇다면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그가 지금 잘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아직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가가 이르긴 하다. 그럼에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처음에 어떻게 하느냐를 보면 대충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는 있다. 왕실장 등장 이후 정국은 되레 더 꼬였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동을 놓고 청와대가 주저하자 여당 대표가 3자 회동 카드로 중재에 나섰다. 이때 김 실장이 5자 회동 방안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결과적으로 그는 여야 당 대표 모두를 물 먹인 셈이다. 또 황우여·김한길 대표 간의 이른바 ‘황-김 라인’을 마비시켜 정치가 실종되게 만들었다.

아들 부시가 8년 동안이나 대통령으로 있었는데, 그의 참모 칼 로브라는 인물은 백악관에서 각종 정책이 정치적으로 어떤 효과나 파장을 일으킬지 검증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의 게이트키핑으로 인해 부시 정권의 기반은 안정적으로 관리됐다. 하지만 세제개편안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걸 막지 못한 예를 보면 그가 칼 로브처럼 탁월한 정무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좋은 참모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성공은 참모 루이 하우의 ‘아니오’ 직언 때문이고, 당 태종의 정관지치는 위징의 ‘안 됩니다’ 간언 때문에 가능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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