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28 18:54
수정 : 2013.08.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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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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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발표된 대입 개편안을 보니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국사(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될 예정이더군요.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통령님의 의중이 개편안에 반영되었다고 보입니다. 지금도 국사가 고등학교 이수과목(내신)에 필수로 되어 있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대입 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국사 교육이 부실해질 우려가 있지요.
하지만 ‘역사교육 강화’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명분의 이면에, 사교육업계의 환호와 학생들의 한숨이 들립니다. 딜레마입니다.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긴 해야겠는데, 그러자니 사교육비와 부담감이 커집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수능 국사를 절대평가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수능은 상대평가입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시험이지요. 모든 응시자들을 일렬로 세운 뒤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등급이나 점수(표준점수)를 줍니다. 그러니 무한경쟁이 불가피합니다.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경쟁자들을 제치기 위한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수능 국사를 절대평가로 치르면 어떻겠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훌륭한 모델도 있습니다. 미국의 에스에이티(SAT)의 경우 문제은행형으로 관리하여 무려 20가지 선택과목을 1년에 7회나 시행하고, 학생들은 언제든 몇번이든 응시할 수 있습니다. 또 민간에서 시행중인 ‘한국사 검정시험’에서는 급수별 인증을 줍니다. 이런 모델들을 참조해서 우선 국사만이라도 절대평가로 바꿔 주십시오. 합격/불합격(pass/fail)을 판정하는 방식도 있지만, 그럴 경우 불합격자 처리 문제가 골치 아픕니다. 그러니 절대평가로 시행하되, 일정 점수 이상이면 만점을 주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국사 교육을 내실화하는 효과도 있고 사교육비와 부담감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기왕 절대평가로 바꾸는 김에 ‘논술형 절대평가’로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대입시험의 관리 주체가 정부이든(프랑스·독일·스웨덴 등) 민간기관이든(영국) 대학이든(핀란드) 공통적으로 모두 논술형 절대평가입니다. 객관식 시험과 달리 세부적인 암기보다는 역사의 큰 흐름과 의미를 헤아리는 능력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역사교육 강화라는 취지에 잘 어울립니다.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시절 세 번 임진왜란을 배우지만 <난중일기>를 한 번도 안 읽어봅니다. 대통령님도 학생들이 ‘난·중·일·기’ 네 글자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는 난중일기를 읽고 이순신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국사 교육을 원하실 겁니다. 그러자면 평가가 객관식을 벗어나 논술형으로 변해야 합니다.
반론이 있겠지요. 첫째, 채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논술형 평가의 노하우를 가진 곳은 대학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고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둘째, 공교육에서 논술형 평가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냐? 충분히 이해가 되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교사들에게 왜 주입식 문제풀이 교육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입시가 객관식이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곧 ‘주입식 문제풀이 교육’과 ‘객관식 대학입시’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님의 의지로 이 악순환을 끊어내고 진짜 인문적 향기가 물씬 나는 역사교육을 출발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대입 시험이 수능/논술로 이원화되어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풀어갈 역사적 첫걸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교육비와 부담감을 제어하려면, 일정 점수 이상이면 만점을 주는 방식을 상당 기간 동안 채택해야 할 것입니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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