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9:04
수정 : 2013.09.0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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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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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을 휘황찬란하게 수놓았던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화두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주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한국의 10대 재벌기업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언명하면서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던 공약을 공식적으로 뒤집었다.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대신, 그동안 약속해온 대기업의 순환출자 금지 법안이나 재벌의 중대 범죄와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는 더욱 뒷전으로 밀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여전히 경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기업 쪽으로 더욱 기울어 가는 정부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가슴엔 무거운 돌이 하나 올라앉은 듯하다.
‘알바’와 인턴으로 청춘을 보내는 20대 청년들, 40대를 넘기기도 전에 은퇴 압력에 시달리는 한국의 불안한 직장인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월급과 차별 처우를 받아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비정규직들,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직장에서 떨려 나가는 여성들, 지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는 도외시한 채 박근혜 정부는 친기업 일변도의 정책을 표방하여 스스로 내놓은 경제민주화의 약속으로부터 명백히 역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민은 나라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정부에 적극 협조했다.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에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고 구제금융과 재벌 빅딜, 수출 기업을 위한 환율 방어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당연한 비용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언제나 기업 하기 좋은 환경만을 강조하다 보니 사회의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확대되고, 소수의 기업에 대한 특혜 구조가 지속되며, 기업인들의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것이다. 도처에 만연한 조세 포탈과 불법 재산 증여, 비자금 운용과 불법 로비에 대한 기업의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어떻게 세계적 기업의 기초를 세울 것인가. 나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 기업한테,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언감생심 어찌 강조할 수 있겠는가.
우리 헌법 119조에 따르면 정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을 추구하고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며 개인과 기업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제 그 헌법 정신을 살려 노동자와 서민들의 삶을 기반으로 안정과 성장의 동력을 찾는 경제정책의 민주적 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한 변화 없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경제는 한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총체적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경제활동의 중심인 삶터를 인간답게 바꾸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정치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했으면 진정으로 경제를 민주화시키는 일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생애 주기별 복지를 하겠다고 전 국민에게 약속을 하고서는 무상급식과 보육을 할 충분한 예산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서울시에 대한 추가 지원을 거부하는 정부의 모습은 참 실망스럽다.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불법 파견과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는 왜 해결하지 못하는가. 경제민주화를 기세 좋게 내놓고 국민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이 재벌 편들기만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민주화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을 근본적으로 실망시킨다면 앞으로 얼마나 거센 반발과 저항을 맞게 될지를 이 정부와 정치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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