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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6 19:05 수정 : 2013.09.16 19:05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아이돌 가수가 토크쇼에서 한때 얼마나 뚱뚱했는지 등의 신변잡기를 털어놓는다. 운동선수가 리얼리티 예능에서 갖가지 도전을 수행하며 모진 고초를 겪는다. 영화배우가 늦은 밤 애인과 데이트하는 현장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이튿날 특종으로 보도된다.

왜 우리는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일까? 연예인이 등장하는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나 교육 프로그램보다 파급력이 더 크고 시청률도 더 높은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친숙하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그 이유까지 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중이 연예인에게 쏟아붓는 관심이야말로 대단히 별스럽고 기이하다.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매일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허구와 사실을 잘 구분하여 자신에게 쓸모 있는 사실에만 관심을 집중했던 사람만이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나 교과서를 정독하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예능을 시청하는가? 왜 사람들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탤런트 이서진이 대만 여행에서 소녀시대 써니와 드디어 만났다는 ‘쓸데없는’ 소식에 덩달아 기뻐하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곧, 시각 자료는 메시지를 훨씬 더 신뢰감 있게 만든다. 1839년에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도 신문 제작자들은 판화를 써서 신문 기사를 한층 더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림이 들어간 기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사진이나 동영상이 들어간 신문 기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청각이나 후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와 달리, 우리는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체험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내 눈으로 본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까닭은 인간의 마음이 수백만년 전 수렵-채집 환경에 여전히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진과 동영상처럼 현실 못지않게 생생한 시각적 자극은 우리가 진화한 먼 과거에는 없었다.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진 실제 장면을 잘 지각하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다듬어진 우리의 마음은 오늘날 사진과 동영상이라는 낯선 자극에 의해서도 하릴없이 활성화된다.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은 100명 안팎의 작은 혈연집단 안에서 거의 매일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살았다. 그들은 모두 나의 친척이나 친구였다. 대중매체가 퍼붓는 시각 자극에 휩쓸리는 현대인은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 내가 진짜로 자주 만나는 사람들, 즉 나의 사회적 관계망에 속한 친척이나 친구라고 느끼게 된다. 빅뱅·유재석·수지·윤후가 모두 내가 아주 잘 아는 ‘친구’인 마당에 어찌 그들의 건강·지위·연애·패션·가족 등 시시콜콜한 일상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반면에, 이름은 들어 봤지만 얼굴은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나의 사회적 관계망을 벗어나는 이들이어서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내 ‘친구의 친구’에 해당하는 그들까지 일일이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왜 정치인들이 언론사의 카메라 앵글 안에 기를 쓰고 얼굴을 들이대는지 이제 이해될 것이다. 온라인에서 만난 관계가 점차 진척되면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어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매일 우리는 연예인의 시각적 상을 본다. 그리고 이는 그 연예인이 내 관계망에 속하는 친척 혹은 친구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어느새 받아들여진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매일 연예인을 만난다. 진화적 시각은 대중들이 종종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집착함에 따르는 문제들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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