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17 17:09
수정 : 2013.09.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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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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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이다. 학생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는 강사를 국정원에 신고하고, 고려대는 표창원 전 교수의 강연에 대관을 거부하기도 했다. 게다가 언론은 ‘아르오’(RO) 모임에 공무원과 교사들도 다수 참석했다는 내용을, 담당 검사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실 확인 없이 받아쓰고 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을 계기로 하여 매카시즘의 광풍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3일에 있었던 ‘해방연대’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무죄 판결은 반갑다. 적어도 사상의 자유와 관련하여 법원이 균형의 한 축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법원은 “해방연대가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더라도, 실제 의미와 내용을 따져보면 선거와 의회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 내용은 상식적이고 법리에도 부합한다.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가 학문적·이론적 시민권을 획득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학문·이론 영역에서의 시민권 인정 여부와는 달리, 실천·정치 영역에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탄압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은 이론과 실천 영역에서의 인정의 괴리는 공안 당국의 자의적 법집행을 가능케 해왔다. 이번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회의 진전에 따른 정당의 분화는 필연적이다. 남북분단의 현실이 사회주의 정당을 지향하는 활동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시기도 지났다.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북한을 억압적 사회체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북한 체제 비판은, 보수 세력의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그 객관성과 급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건을 계기로 삼아 법무부에서는 통합진보당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 검토를 위한 특별대책팀을 구성했다고 한다. 이에 맞추어 새누리당 의원들은 위헌정당 소속 의원의 자격 상실과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우선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있기도 전에 정부 차원에서 대책팀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공안정국 조성의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의심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가 사실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혐의를 통합진보당 차원의 활동, 또는 통합진보당이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지난 10여년간의 정당 활동이나 당의 강령 등에 비추어, 통합진보당이 헌법 적대적 정당이라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
일부 보수 세력은 통합진보당의 강령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의 해방연대 판결이나, 조봉암의 진보당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1958년 이승만 정부는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하고, 직권으로 강제해산하였다. 당시 진보당은 “변혁적 세력의 적극적 실천에 의하여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착취 없는 복지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강령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봉암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러한 강령 자체에 대하여는 합헌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혐의는 그 내용이 내란의 구체적인 예비·음모와 관련한 것이라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사상의 자유’의 측면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내란죄의 법리와 증거에 기초한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체제전복적 폭력을 수단으로 하지 않는 한, 정당 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사상의 자유 영역이고,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약 10만명에 달하는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를 민주주의의 적대세력으로 규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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