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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23 18:38 수정 : 2013.09.23 18:38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추석 명절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은 원외투쟁을 접을 수는 없는 처지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 담론을 들먹이며 민주당을 압박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을 외치고 맞춤형 복지를 내세워 표를 얻었다. 그런데 기실은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들짝 놀란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한 노무현의 엔엘엘 발언, 이석기 내란음모 건을 들고나와 치부를 감추려 하였으며, 급기야 국정원에 칼을 겨눈 채동욱 검찰총장까지 끌어내리려 한다. 그들은 국정원을 살리자고 ‘민생’을 완전히 뒤로 제쳤다.

지난 17일 기획재정부는 경제·민생활성화대책회의를 열고,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불편, 부당한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기능식품 자동판매기 허용’ 등 기업 활동을 막는 ‘가시’를 32개 뽑고, 중소기업 금융·세제 지원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대기업 총수를 만난 박근혜 대통령은 투자를 촉구하면서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어려움 해결이 ‘민생’이란 이야기인가?

일자리 창출이 민생 정책의 으뜸인 것은 맞다. 그런데 아직까지 박근혜표 일자리 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고용률을 70%로 높이겠다는 구호는 있지만,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 계획은 그 실체도 모호하고 정부가 제안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현재도 극히 열악한 고용현실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진척된 것이 없고, 정리해고 요건 강화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민생’ 정책은 각 경제주체의 처지에 따라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성이 큰데, 지금의 ‘민생’은 800만 비정규직과 300만 영세자영업자들의 고통 경감, 곧 부와 권력의 분배, 공정한 경쟁의 확보 문제로 집약될 수밖에 없다. 경제약자들에게 ‘민생’이란 재벌기업 횡포의 시정이고, 여기서 이해의 조정과 타협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과연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나 영세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강자들에게 어떤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가? 렌트푸어를 위한 주거대책 마련, 가계부채 해결, 비정규직을 고통스럽게 하는 임금격차와 불법파견의 근절 등 정책의 편향과 시장질서의 불공정 해결을 위해 대통령은 어떤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어떤 법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이 시대의 ‘을’에게 국가나 법은 없고, 강자의 범법은 여전히 무죄다. 경제민주화 없이 ‘민생’이 보장될 리도 없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민주화 담론·정책은 거의 실종되었다. 게다가 국정원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에 불법개입하고도 시정조차 하지 않는 나라에서 과연 경제약자들이 정부를 믿고 따를지도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처럼 또다시 ‘갑’에게 일자리 만들어 달라고 구걸하고,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고 있는 ‘을’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하는 ‘민생’은 그냥 정치수사이거나 ‘기호’에 불과할 것이다. 야당 대표 시절이나 실질적 여당 대표 시절 동안 국회 본회의 출석 꼴찌였으며, 민생 법안은커녕 법안 제출 자체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은 채 국회 정상화와 ‘민생’을 거론하면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는가?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민’이 누구인지, 어떤 ‘민생’ 정책과 법안을 준비했는지 다시 묻는다. 박근혜 정권은 이제 진짜 시험대에 섰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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