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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1 19:13 수정 : 2013.10.01 19:13

이원재 경제평론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나온 공학박사이고 유수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최고경영자인, 사람 좋던 대만 친구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추석 연휴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월드 영 리더스 포럼’에서 만난 친구였다. 무슨 일인가 물었다.

그는 포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베텔재단’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했다. 내가 중국사회과학원을 방문하느라 놓쳤던 곳이다. 시각장애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그 시설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부모가 아이들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이다.

완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갖고 있다. 그런데 태어난 첫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내다버리고 새로운 아이를 갖는다고 한다.

잘못 설계된 제도는 때로 인간성을 파괴한다. 베텔재단의 아이들은 그 극단적인 사례다. 어찌해서 정책목표가 달성된다고 해도, 무너진 마음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제도를 만들고 바꿀 때, 사람들의 마음속 반응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의 기초연금안이 발표됐다. 소득 상위 30%를 빼고 기초연금을 주되,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오랜 가입자일수록 적게 받도록 정한 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어르신들에게 죄송”하다는 발언을 했다. 반면 국민연금을 연계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당하다. 나는 오히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들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걱정스럽다.

나는 국민연금의 오랜 지지자였다. 고갈론이 나왔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기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했고, 주식투자 불가론이 나올 때 사회책임투자를 전제로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옹호했다. 국민연금은 복지국가의 중요한 출발이고, 이 제도에 열심히 참여한 사람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흔들리게 됐다. 이런 식이라면 지지를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는 법과 예산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 마음으로부터의 지지와 신뢰가 필수적이다. 특히 납세자, 국민연금 성실납부자, 기부자 등 복지 기반 확대에 기여하는 이들의 신뢰까지 잃으면 복지국가는 설 땅을 잃는다.

앞서 언급한 포럼에서 한 중국 발표자는 ‘한 자녀 정책이 인구를 억제해 중국과 세계의 지속가능성 향상에 기여했다’고 강변했다. 논리적으로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파괴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인가. 백번 양보해 실제 국민을 손해 보게 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연금 기껏 열심히 냈더니 손해만 봤다는 억울한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이런 마음이 세금 열심히 내봐야 손해만 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복지국가는 물 건너간다.

지금의 30~40대는 그렇지 않아도 힘들다. 기초연금으로 현재의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할 뿐 아니라, 국민연금과 개인저축으로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자산을 불리는 시대는 이미 이전 세대로 끝났다. 현재도 미래도 불안하다. 국민연금마저 흔들면 이 세대는 더 흔들린다. 물론 노인빈곤이 심각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문제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약속 위반으로 몰아가는 것은 좀 쑥스럽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8일 전 발표한 박근혜 후보 공약집에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통합 운영이 언급되어 있다. 모든 노인에게 지급할 기초연금은 예산조차 잡혀 있지 않았다. 실행할 마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야당에서도 언론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그 선거는 정책을 놓고 논쟁하는 선거가 아니었다. 과거와 과거 사이의 감정다툼이었을 뿐이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이원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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