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8:37
수정 : 2013.10.0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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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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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한번 못 해본 남자가 뭇 여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확실한 비법이 하나 있다. 오래 살아서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어느 노인정이나 요양원엘 가도 할아버지들보다 할머니들이 훨씬 더 많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장수하기만 한다면 성별이 남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할머니들의 은근한 시선을 즐기며 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평균수명은 여성보다 5년 정도 짧다. 노년기에만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 사망률보다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유년기건 청년기건 장년기건, 세계 어디서나 남성은 여성보다 모든 연령대에 걸쳐서 더 많이 죽는다. 단, 극히 고령층에서는 남자 자체가 별로 남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사망률이 자연스레 더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자료를 따르면 0살부터 80살까지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의 사망률보다 더 높았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일찍, 더 많이 죽는 진화적 이유는 동물계에서 배우자를 차지하고자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쪽은 대개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컷끼리는 평생 얻는 자식 수의 편차가 크다. 어떤 남자는 수많은 미녀와 염문을 뿌리며 자녀를 여럿 남긴다. 어떤 남자는 평생을 혼자서 외롭게 살다 간다. 아무리 행복하게 무병장수했더라도 자식을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면 진화의 관점에서는 폭삭 망한 처지임에 유의하시라. 곧, 실패하면 수명이 짧아지지만 성공하면 번식의 길이 열리는 위험한 일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 남성만이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진화심리학자 대니얼 크루거와 랜돌프 네스는 20개국에 걸쳐 교통사고, 비교통사고, 자살, 살인, 심혈관 질환, 고혈압, 간 질환, 악성종양, 뇌혈관 질환 등 11개 주요 사망 원인에 따라 남녀 사망률이 달라지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모든’ 사망 원인에 대해 모든 연령대에서 남성이 더 많이 사망함이 밝혀졌다. 특히 남성이 성적으로 성숙해서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에 막 뛰어드는 청년기에 이르면 남녀 사망률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남성이라는 사실은 선진국에서 젊은 나이에 사망을 초래하는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이다”라는 것이 논문의 오싹한 결론이다.
남성은 사회적 지위를 높여 배우자를 얻고자 위험을 무릅쓰다 보니 살인이나 사고, 열악한 근로 환경, 과로로 여성보다 더 많이 죽는다. 누가 몇 달 먼저 태어났는가 같은 남자들 간의 사소한 입씨름이 종종 살인으로 번지는 까닭은 그 입씨름에 남자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행글라이딩, 자동차 경주, 번지점프 같은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다 크게 다치는 쪽도 주로 남성이다.
남성은 질병으로도 여성보다 더 많이 죽는다.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병에 잘 안 걸려서 오래 살게끔 공들여 설계해야 하는 성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이다. 곧, 자연선택은 자식 없이 장수한 할아버지보단 자식을 낳고 요절한 사나이를 선호한다. 사춘기에 분비되는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예로 들어 보자. 이 호르몬은 수염이 나게 하고, 정자를 생산하고, 근육을 키워 주고, 여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한마디로 ‘진짜 사나이’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은 면역 능력을 떨어뜨려 남성이 갖가지 전염병에 시달리게 한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우리의 건강이나 행복에는 무관심하다. 수명을 단축해서라도 번식 성공도를 높일 수만 있다면 그 형질은 선택된다. 이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건강을 더 챙겨야 하는 성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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