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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9 18:54 수정 : 2013.10.09 18:54

김현정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전문의

“실은요, 인생에 이런 축복이 없어요.” 여인은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수줍게 쌩긋 웃었다. 차트에 적힌 칠십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정갈히 빗어 내린 반백의 단발머리가 귓불에 찰랑이고 있었다. 여인은 2년 전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암이라니! 이렇게 살다 죽는 거구나.’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여인은 종갓집 맏며느리로 들어와 사십년이 넘게 시부모와 시조부모를 봉양하고 시누이와 시동생들 챙겨가며 하나둘 늘어가는 자신의 아이들 키우며 밤낮없이 살았다고 한다. “제가 시댁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지금도 시부모님과 백세가 넘으신 시고모님 모시고 같이 살고 있어요. 층층시하 저는 항상 아랫사람이었어요. 살림이며 제사며 어른들 시중 드느라 기 한번 못 펴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여인이 암에 걸리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아무도 저한테 뭘 시키질 않아요. 예전 같으면 물 떠 와라, 감 깎아라, 밤 삶아라, 가서 이것 좀 사와라, 누구네 저것 좀 가져다주고 와라, 이런 잔심부름이 종일 끝도 없이 이어졌었어요. 근데 그게 신기하게 딱 끊긴 거예요. 시어른들은 제가 들을까 봐 조심스레 수군수군하더라고요. ‘며느리 쟤 암에 걸려서 얼마 못 살지 몰라. 우리보다 먼저 갈 수도 있어. 불쌍해서 어쩌누.’ 식구들은 더 이상 제 상전이 아니었어요.” 암이 선언된 그날부터 아무도 여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자유였다. 해방이었다.

여자들의 시집 스트레스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특히 명절을 전후해서 가파르게 올라간다. 추석을 며칠 앞둔 시기였다. 젊은 아낙 한 사람이 손목을 삐어서 병원에 찾아왔고 인대를 다친 것 같아 반깁스를 하게 되었다. 붕대를 감으며 물었다. “어떡해요? 곧 추석인데 이래서 괜찮으시겠어요?” 아낙은 무슨 어이없는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솔직히 너무나 좋아요. 이번 추석은 힘들지 않게 잘 넘어갈 것 같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낙은 깁스 감긴 자신의 손목을 대견한 듯 몇 번이나 어루만지며 넘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명절 끝나서도 후유증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병원에는 명절증후군으로 앓아눕는 사람이 늘고, 법원에는 이혼 접수가 증가한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택배가 증가한다. 원래 명절 전에 폭주했다가 잠잠해지는 게 택배의 일반적인 양상이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명절이 끝난 후에 폭증하는 기현상이 포착된 것이다. 명절로 인해 받은 자신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보상하려는 여심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시집이 괴로운 이유는 결코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문제는 마음이다. 일을 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시키는’ 일을 하는 게 힘든 것이다. 몸이 부림을 당하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마음이 부림을 당하는 것이 진짜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발적 수고는 결혼과 함께 당연한 의무노역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이런 정서적 괴로움은 서서히 여자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여자는 결혼과 함께 갑자기 자신이 자유를 잃었다고 느낀다.

앞서 여인은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심각하지 않은 암이었고 잘 치료되었다. 더욱이 건강을 회복하고도 여인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한번 풀린 고삐는 다시 죄어지지 않았다. 계절마다 한 번씩 끙끙 앓던 허리며 무릎이 싹 나아버렸다. 달고 살던 지긋지긋한 두통도 불면증도 사라졌다. 고생 끝 행복 시작! 여인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부녀산악팀에 가입했고 지난달에는 해발 5000m 안나푸르나 전진기지에 등반여행을 다녀왔다. 다음엔 타클라마칸 사막에 가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인다.

김현정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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