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13 19:08
수정 : 2013.10.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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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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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이중 잣대가 도를 넘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의 특허권을 침해한 아이폰4, 아이폰 3GS, 아이패드 3G, 아이패드2 3G 등 애플 제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여 애플을 보호하였다. 반면에 그 위원회가 애플의 특허를 일부 침해한 갤럭시S, 갤럭시S2, 갤럭시 넥서스, 갤럭시탭 등 삼성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판정을 내리자, 거부권 행사 없이 수입 금지 조처가 그대로 발효되게 하였다. 똑같은 특허권 침해 사안에 대해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 애플의 편을 들고, 삼성에는 물을 먹였다.
과거의 한국 정부도 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직간접 지원을 하고 외국 제품 수입 규제를 하였으므로, 자국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외국 기업을 차별하는 행태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1980년대 이래 자유무역의 전도사를 자임해온 나라다. 우루과이라운드와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그리고 도하라운드를 주도하며 관세와 자본투자 장벽 철폐와 농산물 및 자본 시장의 개방을 외쳐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농축산물 시장과 자본 및 서비스 시장 개방 압력을 넣었고, 그 때문에 우리 농민들은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첨단기술 및 서비스 산업도 외국 기업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무역의 논리 아래 전방위적 압력을 행사하던 당사자인 미국의 대통령이 특허권 침해와 관련해 공정한 무역 관행의 기본 원칙을 내팽개치고 선별적 거부권을 행사하여 국제 기준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이 국제 관행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말 미국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반군을 훈련시키고 군사장비를 지원하며 니카라과 국민을 수만명이나 학살하는 일에 개입하였다. 그 결과 1986년 유엔 국제사법재판소가 미국이 주권평등의 원칙 등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제법 학자들은 냉전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 예외주의”에 큰 우려를 보내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만 국제법이나 국제 기준을 활용하고, 규제를 받아야 할 상황에서는 국제법 체제를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말리아와 신생국 남수단공화국을 제외하곤 모든 나라가 가입한 아동권리에 관한 협약에 대해 국내법과 관행을 이유로 아직도 비준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그리고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규정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의 결의 없이도 폭격을 감행하겠다고 공언하여 또 한 번 국제법 위반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한 나라 정부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취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주권과 자국의 안보, 그리고 국가 이익을 위한 경쟁과 협력이 국민국가의 본연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류가 함께 지키고 키워 가야 할 공동의 원칙과 가치를 부정한다면 문제가 된다. 오늘날의 국제사회는 국가 이익을 위한 무한경쟁과 힘의 논리에 의지하기보다는 평화 속에서 공존공영하며 국가 간의 공정한 협력을 이룰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아래에서 양국 간의 공정한 경제협력의 관행을 만들어 가야 할 이 시점에,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삼성에 대한 불공정한 차별대우를 주도하는 것을 보게 되니 심히 유감스럽다.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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