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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4 18:40 수정 : 2013.10.16 08:05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밀양 송전탑 사태는 경남 산골 마을에서 일어난 매우 작은 사건처럼 보이지만, 박근혜 정권의 갈등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큰 시험대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용산·강정 등지에서 이런 밀어붙이기 식의 대규모 국책사업 수행 과정에서 심각한 충돌을 빚은 바 있는데, 이 정권은 이제 시골의 70~80대 노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용산 세입자들을 ‘도심테러범’이라고 낙인을 찍은 다음 진압을 했는데, 이번에는 시골 노인들이나 ‘외부세력’에게 ‘종북’의 낙인을 찍는 것도 가당찮고, 수천명의 경찰이 힘없는 노인들 진압한다는 것도 웃음거리가 될 판이다.

그들은 “그깟 시골 노인 몇 명 때문에 이 중요한 국책사업 수행을 8년 동안 끌어오다니”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를 것이다. 정부는 보상안을 확정해서 개별 보상에 들어갔고, 정홍원 총리가 현장을 방문한 다음 공사를 재개했다. 그러나 노인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항의하고 있다. 급기야 30여명의 노인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고, 11명의 연행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정부는 항의하는 주민을 이기주의자라고 몰아붙이고 나머지 주민들에게는 약간의 돈을 안겨준 다음, 그래도 계속 항의하는 사람들은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구덩이 파고 죽을 자리에 들어간 ‘달관한’ 노인들에게 보상 대책은 무의미하다. 국가나 공기업의 행정집행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반복되었던 일방주의, 국민 멸시 태도가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지난해 분신자살한 이치우씨의 경우도 용역업체가 자신의 논에 콘크리트를 붓는 등 극히 모욕적인 일을 당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해 자결을 하였다. 이곳의 노인들에게 땅은 부동산이 아니라, 평생 가족의 끼니를 해결했던 삶의 터전이고 가족과 이웃의 추억이 담긴 존재의 기반이다. 이들은 아파트 시세차액을 남기기 위해 수도 없이 이사를 하면서 집을 돈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서울사람들, 특히 이번 일을 결정한 ‘높은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살아왔다. 그들은 집과 땅과 고향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자기가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계속 살아갈 권리가 있다. 외부세력과 결탁한 이기주의자들이 여론을 무시하면서 저항한다는 ‘선무공작’은 이들의 분노만 키울 따름이다. 정부는 왜 이들이 ‘서울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의 터전을 헐값으로 내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시원하게 답한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밀양 송전탑은 장차 건설될 신고리 5~8호기 등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및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작업과 연동되어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으며, 그래서 전력 생산에서 핵에너지 비중을 낮추면 송전탑 강행의 설득력도 떨어진다고 말한다. 물론 전력요금 인상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이 사안을 둘러싼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 이 사업이 정말 국가의 미래가 걸린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모든 내용과 추진 과정을 그대로 공개하고, 주민들을 모든 과정에 참여시키고, 장차 혜택을 볼 기업과 수도권의 주민들이 더 많은 비용을 치르도록 해야 하고, 피해자들이 지금의 삶의 조건을 거의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박정희 시절처럼 힘없는 빈민들을 트럭에 실어 광주 대단지(성남)에 그날 내다 버릴 수도 없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매수’와 ‘진압’으로 갈등을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정부와 한전은 할 만큼 했다고? 천만에.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밀양 2967일, 폭탄이 된 주민들 [한겨레캐스트#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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