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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6 19:18 수정 : 2013.10.16 19:18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살그미 단풍이 든 관악산 위로 펼쳐진 하늘이 너무도 투명하게 맑고 푸르러서 서럽도록 슬프고 그지없이 그리워지는 가을날이다. 우리 민족은 그런 하늘을 가슴에 담으며 닮으려 하고, 피눈물 나는 고통이 이어지고 아무리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더라도 하늘이 보고 있다가 언제인가 벌을 내리리라 소망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을들은 갑을 향하여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 무서운 줄 알라”고 쏘아붙인다.

하늘이 주무시는가, 아님 취하셨는가. 저리도 하늘은 맑은데 이 땅은 아비규환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죽지 못하여 산다고 난리인데, 견제세력이 사라진 나라님들은 마음껏 부패를 일삼고, 유신 잔당과 군부 장성의 두 축으로 이루어진 박근혜 정권은 폭력과 공포와 통제에 의존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교수와 성직자까지 나서서 시국선언을 하고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며 절규를 하는데도 오히려 검찰의 총수를 내쫓고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간섭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악하고 있다.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비판과 견제세력은 같은 당의 인사라도 가차없이 내쫓는다. 집권 1년도 되지 않아서 대선의 핵심 공약들을 포기했다. 사상의 자유와 집회와 결사를 보장하는 헌법까지 어겨가며 국회의원을 내란음모죄로 가두고 14년 동안 참교육을 실천해오던 전교조를 무력화하는 공작을 하고 있다. 지중매설 등 대안이 있음에도 촌에서 농사만 지어온 순박한 노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퍼붓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침묵하고 그중 상당수는 매카시즘에 동조하고 있다. 이건 ‘공안정국’이나 ‘독재’로는 포괄할 수 없는 ‘조폭파시즘’이다.

조폭파시즘은 고전적 전체주의로서 나치즘이나 셸던 월린이 규명한 ‘전도된 전체주의’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조폭파시즘은 폭력과 공포를 통하여 통치한다는 점에서는 나치즘과 통한다. 나치즘이 기업을 국가권력에 종속시켰다면, 조폭파시즘과 전도된 전체주의는 국가권력이 기업권력에 종속된다. 나치즘이 국민을 동원하였다면, 전도된 전체주의는 탈동원하여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게 하며, 조폭파시즘은 국민이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거나 국가의 부름에 동원되도록 조작한다. 나치즘에서 히틀러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통치하였다면, 전도된 전체주의에서는 대통령이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서 기능하며, 조폭파시즘에서는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여 기업-관료-군-대형교회-보수언론으로 이루어진 카르텔의 깡패들이 통치한다.

이제 조폭파시즘 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모두가 알아서 긴다. 관료는 복지부동하고, 언론은 내부검열 시스템을 작동하며, 누리꾼은 비판적 댓글을 삼가고, 지식인들은 승진과 업적, 프로젝트 사냥에만 몰두하고, 신자유주의의 빈곤과 공포에 주눅이 든 국민들은 비판의식과 저항의지를 상실하고 반역의 상상마저 억압한 채 침묵하거나 자발적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

그렇다고 조폭지배층이여, 웃지 말지어다. 반역의 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벼리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공(公)을 관(官)으로 알고 두려워하다가, 두레에 모여 공정(公正)이자 공분(公分)이고 하늘이라고 합의하는 순간 저항의 횃불을 들었다. 당신들이 총과 공포와 감시로 이조차 원천봉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과 비판세력을 잠재울 때 ‘잠수함의 토끼’ 또한 잠들게 함을 잊지 말라. 내부 부패, 원전사고, 4대강 보의 붕괴, 유독가스의 대규모 누출, 경제공황과 같은 대형 참사의 화살이 당신들을 곧바로 향할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터럭만큼이라도 사랑한다면, 대형 참사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쯤에서 그만두기 바란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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