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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23 18:44 수정 : 2013.10.23 18:44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얼마 전, 3명의 젊은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2001년, 오태양씨가 불교도의 불살생 교리와 평화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 뒤, ‘여호와의 증인’ 신도만이 아니라 종교적·평화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추진했지만 엠비(MB) 정부에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의 내각 장관 등 내정자 17명 중 9명이 ‘병역 기피’ 의혹을 받았다. 엠비 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재계 권력자들은 자신의 지위와 인맥, 돈을 들여 병역을 피해간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는 그들의 불법이 합법의 수단이 될지 모른다는 데서 출발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병역 기피와 거부의 차이를 헷갈려 하는데 권력과 지위, 돈을 이용하여 병역을 면제받는 것은 기피이고, 종교적 신념, 평화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수행하지 않고 3년 이하의 감옥 생활을 감수하는 것은 병역거부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감옥살이를 각오하고 병역거부 선언을 하지 않는 한 병역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병역거부 선언을 하지 않고, 병이나 장애가 없는데도 병역 면제를 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아동복지시설에서 5년 이상 지내고 퇴소한 이들이다.

10월15일 주요 일간지마다 “군대 안 가려고 가짜 고아 행세”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최근 4년간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고아 아닌 고아들이 ‘고아사유 병역감면 제도’를 악용하여 1833명이나 병역 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는 기사였다. ‘고아사유 병역감면 제도’란 가족관계등록부상 부모를 알 수 없는 사람, 13살 이전에 부모가 사망하고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 18살 미만 아동으로 아동양육시설, 아동보호치료시설 등에서 5년 이상 보호된 사실이 있는 사람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은 ‘아동시설 5년 요건의 경우 단순 경제적 사유로 인해 아동복지시설에 일정 기간 있다가 퇴소해 가족과 동거하는 방법으로 병역을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며 아동복지시설 위장 여부를 더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를 읽는 순간, 앞으로 아동복지시설을 ‘병역면탈 사각지대’로 보거나 아동보육시설에서 퇴소한 젊은이들을 병역기피자로 몰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아동복지시설의 인권침해나 재단 비리 조사가 아니라 병역 기피에 악용될 여지를 조사하라니 가뜩이나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아동청소년이 더 위축될까 우려된다.

현재 아동복지시설 입소자 중 ‘진짜 고아’는 거의 없다.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부모의 이혼이나 폭력과 유기 등의 이유로 보호소를 거쳐 보육시설에 입소한다. 그 어떤 아이도 5, 6년 뒤의 병역 면제를 위해 아동보육시설 입소를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부모도 병역 면제를 위해 아이를 아동보육시설에 보내지 않는다. 더욱이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부터는 그 혜택도 사라진다. 기사에서는 국적 상실 및 이탈 방식과 유학, 가짜 진단서 발급 등으로 고의적인 병역기피를 해 온 이들에 대한 조사도 촉구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주장과 기사는 언뜻 공정한 잣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병역기피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힘과 돈을 가진 부모 덕에 병역을 회피한 자들과 아동보육시설 퇴소자들의 병역 면제 사유는 같을 수 없다. 법은 ‘강자’가 아닌 ‘약자’를 위한 것이어야 정의가 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창조도 미래도 없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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