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28 18:52
수정 : 2013.10.28 18:52
|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
유권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후보를 선택한다. 이것이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마음에 대해 품는 기본적인 가정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선거철만 되면 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치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따르면,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가 실제 투표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서구의 경우,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전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공약한 정당을 의료보험이 있는 사람들보다 딱히 더 지지하지는 않는다. 군대에 가야 하는 젊은 남성들이 군 복무 기간을 연장하는 정책을 장년 남성들보다 특별히 더 반대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대선에서 저소득층은 부의 재분배를 주장한 민주당 후보보다 새누리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더 지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유권자가 경제적 이득에 이끌려 표를 주는 유일한 예외는 후보자가 약속한 이득이 “크고, 즉각적이고, 널리 홍보되었을” 때다. 취임 첫해부터 65살 이상 모든 노인의 통장에 매달 20만원씩 꽂아준다던 약속은 그 좋은 예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원동력은 무엇일까? 후보자의 키, 외모, 성별, 나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특히 중요한 요인은 도덕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거스르면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실천해줄 후보에게 투표한다. 그러면 후보자 중에 가장 도덕적인 후보가 항상 만장일치로 뽑히는 이상적인 상황이 벌어질까?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도덕’이 뜻하는 바가 다르므로, 선거의 당락은 종종 근소한 표차로 갈린다.
우리는 흔히 도덕은 한 가지 빛깔로 되어 있다고 믿는다. 독립적인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고 불쌍한 약자를 돌보는 것이 바로 도덕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인류학자 리처드 슈베더는 전세계의 도덕 체계를 두루 살핀 끝에 도덕은 세 가지 빛깔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도덕에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통합과 질서를 중시하는 차원, 그리고 영혼의 깨끗함과 신성을 중시하는 차원도 있다는 것이다. 상사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부하 직원이나 축구 한일전에서 일본 대표팀을 응원하는 한국 사람을 우리가 비도덕적이라 여기는 까닭은 그러한 행동이 공동체의 통합을 흔들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를 따르면 개인·공동체·신성이라는 도덕의 세 차원 가운데 진보적인 사람들은 개인을 특히 더 중시하는 반면에 보수적인 사람들은 셋 다 비슷하게 중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선동한 새누리당의 대선 전략은 결과적으로 보수층의 도덕심을 자극하여 보수층을 투표소로 끌어냈다. 국익을 지키지 못한 ‘비도덕적인’ 당의 후보를 표로 응징하지 못한다면, 기권한 사람도 죄를 짓는 셈이라고 보수층은 받아들인다.
유권자들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보수와 진보가 이해하는 도덕은 사뭇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저소득층이 새누리당을 훨씬 더 지지한 이유는 교육 수준이 낮아서 사탕발림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며, 그러니 진보세력이 그들의 삶을 향상할 유일한 대안임을 확실히 인식시키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다 해결되리라는 분석은 이런 점에서 한계가 있다. 진보세력은 보수적인 국민들이 그들에게 품는 생래적인 거부감, 곧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흔드는 ‘비도덕적인’ 정당이라는 시선을 어떻게 바꿀지 궁리할 필요가 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