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3 19:06
수정 : 2013.11.0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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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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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이 전쟁이나 무력 위협 또는 무력행사를 통해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 그러한 목적으로 육해공군, 기타 전투력을 보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화헌법 덕분에 일본은 전후 복구에 성공하였고 주변국과 큰 갈등 없이 발전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우며 일본 영토 밖에서 자위대의 군사력 행사가 헌법 위반이 아니라는 쪽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의 공해상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여 미군을 돕는다는 이름하에 공격적 전투행위를 감행할 수 있다며 군사적 시위를 벌이려 하고, 아시아 지역에 다시 군국주의의 깃발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미·일 양국의 외교 및 국방 장관으로 이루어진 2+2 회담에서 집단자위권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에 이어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을 통하여 일본 헌법 해석은 일본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집단자위권의 확대해석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만약 미군 함정이 한반도 동해상에서 북한이나 중국의 공격을 당한다면 일본 자위대가 돕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퍼지고 있다. 중국의 국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북한의 핵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는데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심각한 상황이므로, 군사비 부담도 덜고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헌병 역할을 대행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미국에는 합리적 전략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큰 실책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의 복잡한 아시아 정세 아래에서 일본의 군국주의 깃발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어느 일방에 무력공격이 벌어지면 이를 공동의 안보 문제로 본다고 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 간의 안보조약은 단지 일본의 행정관리구역 내에서 벌어지는 무력공격에 대해서만 공동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이렇게 상호방위의 범위를 제한하는 이유는 일본의 군사력이 중국이나 남북한 등 주변 국가와의 충돌로 이어지는 상황을 배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제 일본 영토 이외에서도 집단자위권이란 이름 아래 일본의 군사작전을 용인하겠다는 것이니, 한국과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내 분란을 키우는 것은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시아는 이미 냉전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와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동아시아정상회의 등 아시아 지역은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미국이 지역 내 군사적 갈등을 부추기면 오히려 반대세력을 키워 결과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아시아지역에서의 국가이익을 지키고자 한다면 지역 내의 평화를 위한 대화와 협력의 장을 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를 촉구하고 동아시아 평화질서 형성에 동참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역평화안보협력의 시스템을 만드는 논의를 제안하고 그 속에 능동적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지역 내에서 누구에게 줄을 설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아시아의 평화 협력을 위한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이 주변국의 종속변수가 되기보다는 지역협력을 이끄는 선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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