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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4 19:12 수정 : 2013.11.15 00:31

이계삼 <오늘의 교육>편집위원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밀양 송전탑 일로 뛰어다니다 보니 녀석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심한 나날이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달리 맡길 데가 없어서 아기 때부터 온갖 집회에 데리고 다녔는데, 서너살 무렵에 ‘철의 노동자’를 완창해서 주위를 경악시키기도 했던 녀석이다. 그런데 어느새 ‘보수 반동의 시기’에 접어들었는지 제 부모가 목을 매고 있는 세상 문제에는 눈길을 잘 주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빠를 두고 ‘송전탑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자식들이 있을 텐데 왜 아빠가 자식 역할을 대신 하는 거야?’라고 냉정한 질문을 던졌다고 제 어미가 전한다. 오직 축구에만 미쳐 있을 뿐, 공부나 책 쪽으로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는 녀석의 지성이 그래도 꽤 흡족하게 자라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밀양 송전탑 전까지는 주로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고 발언해온 나에게 사람들이 나의 ‘자식 교육’에 관해 물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방치하고 있다’고 답한다. 약간의 농을 섞은 것이지만 또한 내 소신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내게 오늘날 부모들과 같은 방식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뭔가 ‘교육’을 시키려 들었다면, 나는 분명히 엇나갔을 것이다. 부모님은 다만 당신들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뿐이다. 당신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했고, 나는 그들의 고단한 나날을 지켜보며 노동하는 민중의 삶에 대한 뚜렷한 형상을 얻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누구도 맡지 않으려 하던 시신 수습과 염하는 일을 도맡아 하셨으며, 떠돌이 거렁뱅이에게 아랫방을 내주고 머물게 한 일이 허다했다. 자비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거지가 찾아오면 당신이 먹던 밥을 대신 내주시곤 했다. 당신들은 자신의 삶으로 닥쳐온 인연들에 최선을 다했고, 외면하지 않으셨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님이 삶의 본으로 보여준 것이었고, 내가 가진 허위와 악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들도 넘어설 수 없었던 시대와 세상이 쳐놓은 장막의 그늘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오늘날 교육은 대개 성장과 인격형성의 실제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허위의 의례에 불과하다. 우리의 삶은 세상이라는 ‘본’에 의해 테두리 쳐지고, 부모라는 혈육들의 ‘삶의 본’이 거기에 피와 살을 입힌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별로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교육이 중요한 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오늘날 성장과 인격형성의 시간대를 교육이라는 과업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이를테면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 매일처럼 벌어지는 충돌의 주역들, 제복을 입고 공무를 수행하게 되면 그들은 국가의 대리인이며 자신의 존립기반인 국민에게 봉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망각한 일부 경찰관들, ‘차 빼지 않으면 망치로 차를 깨서 견인해 버리겠다’고 폭언을 하거나 미디어 활동가의 카메라를 향해 “야, 이 개~새끼야”라고 욕을 하고는 얼굴을 들이대고 눈을 희번덕이는 경찰관에게 필요한 것이리라. ‘경찰 인권교육’ 같은 것, 혹은 ‘경찰관직무집행법 교육’ 같은 것.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좋은 삶의 본’이다. 나는 내 자식에게 좋은 삶의 본을 보여주지 못할 것을 두려워할 뿐, 자식 교육에 무심한 것을 자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아들도 아빠가 왜 이러고 사는지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를 괴롭게 자문하게 될 때, 우리 집으로 찾아들었던 여러 이웃의 부탁을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시던 우리 부모님을 생각할 것이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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