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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9 18:51 수정 : 2013.11.19 18:51

정정훈 변호사

2000년의 일이다. 방송인 홍석천씨가 국회 보건복지부 감사에 참고인 출석 요청을 받고 국정감사장을 찾았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국회의 품위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제동을 걸어 홍석천씨의 국감 출석은 무산되었다.

그 후로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조금씩 변화해왔다. 동성애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15살 이상 시청가’로 분류되어 지상파를 통해 방송되었다. 최근에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이러한 인식 변화가 확인되기도 했다. 대법원이 영화 <친구 사이?>에 대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분류결정처분 취소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소송의 발단은 이렇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두 남자 주인공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 등을 문제 삼아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하고 ‘모방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영화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에 대한 소송에서 1, 2심 판결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분류가 부당하다는 취소 판결을 하였고, 최근 대법원에서도 이를 확정한 것이다.

나는 인권 강의를 하게 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문제 삼은 바로 그 장면을 수강자들에게 제시하고 느낌을 물어보곤 했다. 다양한 반응이 있지만, 그 반응들의 뿌리에는 ‘낯설다’는 공통된 느낌이 놓여 있었다. 이 낯선 느낌이 바로 영화 <친구 사이?>가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두 카우보이의 동성애를 애틋하게 묘사하여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미국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국내에서 ‘15살 이상 관람가’로 분류되어 상영되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국내의 청소년들이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일반 관객의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피해가기 위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그 관계를 먼 거리에서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화 <친구 사이?>는 관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들이 광장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동성애자들 역시 이성애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관계 맺는다는, 이 사회가 불편해하는 사실을 낯설게 드러낸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성찰적 거리’를 만들어내려는 영화적 전략에 근거한 것이다. 이 장면은 대부분의 이성애자 관객에게 ‘낯선 느낌’을 유발하여 동성애자의 성과 사랑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가시화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이런 영화적 전략과 그에 따른 묘사를 법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이 더욱 의미를 지니는 것은 2007년도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 관한 판결과 대비되는 측면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청소년들에게 동성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성적 상상이나 호기심을 불필요하게 부추기거나 조장하는 부작용을 야기하여 인격 형성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 역시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영화 <친구 사이?>에 대한 판결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성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영화 <친구 사이?>에서 감독은 사회의 편견에 대한 성찰을 영화적으로 요구하며 관객의 ‘이성’을 환기하고자 했다. 대법원은 법률에서 수용되는 도덕이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판결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 일부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완강하지만, 좋은 작품과 좋은 판결을 통해 동성애 관계가 더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사회가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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