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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1 19:12 수정 : 2013.11.21 19:12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나진은 한반도 최북방의 항구다. 나진만이 해안을 둘러싸고, 만 입구는 두 개의 섬이 천연방파제 구실을 한다. 수심이 깊고, 물이 맑으며, 겨울에 얼지 않는다. 대륙으로 들어가는 입구고, 태평양으로 나오는 출구다. 나진에서 두만강 철교를 지나 하산까지 54㎞, 이 구간의 철도가 완공되었다. 한-러 정상회담에서 나진~하산 물류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5·24 조치와의 관계다. 정부의 설명처럼 러시아 투자 지분을 사는 간접투자이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을까? 아니다. 관계가 있다. 이 사업은 5·24 조치와 충돌한다.

왜 포스코가 이 사업에 참여하려 하는가? 나진항을 통해 러시아 극동의 유연탄과 철광석을 실어오기 위해서다. 포스코가 있는 포항으로 말이다. 그런데 5·24 조치는 남북 해운협력을 불허한다. 나진~부산 항로도 그때 중단되었다. 나진항을 통과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화물도 우리 쪽 항구에 들어올 수 없다. 투먼(도문)시와 훈춘(혼춘)시에서 그동안 몇 번이나 나진항 통과 화물을 부산 혹은 포항에서 환적해줄 것을 요청했다. 5·24 조치 때문에 정부는 거부했다.

포스코는 나진~포항의 항로를 전제해서 투자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미쳤다고 투자하겠는가? 박근혜 정부도 5·24 조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5·24 조치의 원인이 아니라, 목적을 검증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 조치의 목적은 북한을 제재하는 것이다. 제재의 효과가 있는가? 없다. 북-중, 북-러 경제협력만 증가했다. 그리고 북한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 제재의 실효성이 없는데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북한에 고통도 주지 못하면서 우리만 손해 보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낡은 색안경을 오래 쓰고 있으면 현실을 놓친다. 보수가 보수적 가치의 핵심인 국익을 부정해서야 되겠는가? 항구를 한번 떠난 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베 지진으로 부산항이 허브 항만으로 떠올랐을 때를 기억해야 한다. 배들은 다시 고베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동북아 물류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중국의 연안 항만들은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부산항으로 오던 환적 화물의 장래가 불투명하다. 북극항로도 새로운 변수다. 물류 지도가 출렁거릴 때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나진항이 동북아 물류 경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나진항 1호 부두를 차지하면서 동해 출구를 얻었다. 나진항을 통해 동북지역의 자원을 남방지역으로 운송하고 있다. 러시아도 3호 부두를 얻었다. 수출용 석탄 수송항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나진항을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로 생각한다. 나진까지 해운물류로 오면 바로 철도와 연결된다. 1905년 일본이 을사늑약 직후 나진에 항구를 만든 이후 10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나진을 둘러싼 지경학 또는 지정학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구상은 시의적절하다. 다만 정부의 부처들이 전략을 공유하고, 충돌하는 정책을 조정해서 일이 되도록 했으면 한다. 얼마나 많은 정책들이 과잉홍보를 했으나, 알고 보면 모순이고, 결국 거짓말이 되고 있는가? 외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우선 나진항으로 나오는 중국과 러시아의 화물을 받아야 한다. 포항항을 국제항으로 만들어 놓고 중국·러시아의 자원이 항구로 들어오는 것을 불허했던 이명박 정부의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신뢰가 불신에 기초한 억지개념과 충돌했고, 비무장지대 평화공원 구상에서 평화와 공원이 충돌했다. 이제 유라시아 구상과 5·24 조치가 충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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