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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7 19:16 수정 : 2013.11.27 19:16

이범 교육평론가

뛰어난 운동선수를 입학시켜 온 것은 우리나라 유명 사립대들의 오랜 전통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연예 활동 경력을 활용하여 다양한 학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김연아는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고, 문근영은 성균관대 국문과에 자기추천 전형으로 입학했다. ‘개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나도 이런 자녀가 있다면 이런 전형을 권유할 것이다. 하지만 ‘제도의 정당성’ 문제로 가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특기자라는 이유로 선발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나라마다 전통이 다르다. 프랑스나 독일이라면 꿈도 못 꾼다. 무조건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에서 상당한 점수를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를 시행하는 미국이나 영국이라면 학력이 다소 못 미쳐도 스포츠나 연기 경력으로 입학에 도전해볼 수 있다. 이것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당국의 노력일까, 아니면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오를 사람을 입도선매하는 일종의 학벌 장사일까? 나도 명확한 판단은 서지 않지만, 특기 분야가 운동·연기·대중음악 쪽이라면 어차피 소수일 테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어·수학·과학의 경우엔 전혀 다르다. 운동·연기·대중음악과 달리 핵심 대입과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교육 업체가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작동한다. ①영어·수학·과학 선행학습을 일찌감치 시작한다. ②선행학습한 경력(또는 이를 통한 수상 실적 등)을 활용하여 특목고 진학을 시도한다. ③고등학교에서 토플 성적 또는 올림피아드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통해 대학 특기자전형 합격을 노린다. ④설령 원하는 대학에 특기자전형으로 진학할 수준에 도달하는 데 실패해도 영어·수학·과학은 핵심 대입과목이므로 이를 미리 학습한 것이 대입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2009년 특목고 선발제도 개편을 통해, 위 고리 중에서 ②를 끊어냈다고 믿는 것 같다. 외고는 비교적 잘 끊어냈다. 하지만 일부 과학고는 면접을 통해 계속 반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영재학교들은 거의 치외법권, 한마디로 복마전이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토플이나 올림피아드를 겨냥한 사교육이 그다지 감소하지 않았다. 가장 말단에서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③, ④가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④가 강력하다. 어차피 대입에서 유리하다니까!

특기자. 다른 말로 영재. 어떤 교육컨설턴트는 거리낌없이 ‘우리를 먹여살릴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한명의 천재가 십만명을 먹여살린다니까. 사실 영어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아무나 토플 고득점을 하지는 못한다. 고등부 올림피아드 경시대회에 입상하려면 확실히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당연히 대학에서 이들을 마음껏 선발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전형에 합격하려면 사교육이 필수라는 점이다. 공교육 어디에서도 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고생들도 대치동의 전문학원을 다니며 준비한다. 불공정 경쟁의 극치다. 이번에 발표된 대입제도 개편에서 특기자전형은 기만적이게도 ‘실기 위주 전형’의 일부로서 살아남았다. 수능/논술/학생부 세 가지로 대입 전형을 단순화하겠다는 대선 공약 위반이다.

기필코 ‘우리를 먹여살릴 아이들’을 따로 선발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런 전형을 준비하기 위한 고급 인터넷강의를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대학별로 조교들을 차출해서 수백명의 질의응답진을 운영하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눈 딱 감고 폐지하라. 정녕 비범한 재능이라면 서울대가 아니라 한양대나 경북대에 간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를 먹여살려 줄 것 아닌가.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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