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1 19:07
수정 : 2013.12.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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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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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얘기가 쏙 들어갔다. 복지 공약들이 하나둘 ‘빈 약속’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등록금 공약은 흰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대학생을 둔 집집마다 한숨 소리가 그칠 새가 없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라 하지만 여기에 주거비·식비·교통비·책값·용돈 등 최소한의 생활비만 합쳐도, 대학생 하나가 1년에 감당해야 할 부담이 2000만원은 족히 넘는다. ‘대학생 2000만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독일엔 대학 등록금이 없다. 1946년 당시 22살이던 프랑크푸르트 대학생 카를하인츠 코흐가 수업료는 위법이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함에 따라 헤센 주에서 최초로 수업료가 폐지되었다. 그 후 1970년까지 수업료는 독일 전역에서 차례로 사라졌다. 오늘날 학생이 대학에 내는 돈은 한 푼도 없다. 물론 200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바람 속에 몇몇 주에서 소정(1년에 약 75만원)의 등록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이마저 모두 폐지되었다.
독일에선 등록금만 없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의 생활비는 국가에서 대준다. 이를 ‘바푀크’라 한다. ‘모두를 위한 교육’을 공약으로 내건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1년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바푀크 덕분에 오늘날 독일 대학생들은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똑똑한 학생’과 ‘비전을 가진 정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생들은 1960년대 초 대학 개혁안을 스스로 만들고, ‘학생의 경제적 해방’을 대학 개혁의 3대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생활형편과 학업능력에 따라 장학금을 주는 전통적인 방식은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학생들은 비판했다. 그들이 제시한 대안은 ‘연구보수’였다. 대학생의 본분은 ‘연구’에 있고, 연구는 ‘사회적 노동’이므로, 대학생의 연구 활동에 대한 보수를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한편 브란트 정부는 ‘교양사회’라는 비전 아래 돈이 없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천명했다. 학생들의 ‘연구보수’ 구상과 브란트의 ‘교양사회’ 비전의 합작품이 바로 ‘바푀크’다.
우리에겐 모두 꿈같은 얘기다. 대학 등록금은 -소득 대비- 세계 최고이고, 대학생의 생활비는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부자 부모를 둔 소수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치솟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에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밤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수업을 듣는 현성이, 목돈을 벌겠다고 며칠씩 병원 임상실험 침대에 누웠다 휑한 얼굴로 나타난 용민이, 동생이 대학에 입학해 휴학할 수밖에 없다며 고개를 떨구던 희정이. 이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이 모든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가에 있다. 한국은 대학교육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무책임한 나라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 나라처럼 대학생 교육비를 거의 전적으로 가정에 전가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어디에도 대학교육의 80% 이상을 비싼 사립대학에 떠맡기는 나라도 없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떠맡아야 할 대학 교육비를 우리 부모들이 대신 짊어져왔다. 이젠 국가가 국민에게 진 빚을 탕감할 때가 되었다. ‘대학 등록금’이란 말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처럼, 이제 사전에서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대학생 생활비에 대한 지원 또한 소수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이라는 ‘시혜’가 아니라, 연구라는 ‘사회적 노동’에 대해 모두에게 지급되는 정당한 ‘대가’로 보아야 한다.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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