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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3 19:06 수정 : 2013.12.04 08:44

이원재 경제평론가

영국 스코틀랜드의 초등학생 마사 페인은 2012년 5월 자신의 블로그에 학교급식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다. 스스로 평가지표를 만들어 급식의 질을 평가했다. 한달 남짓 지난 어느 날 마사는 수업 중에 교무실로 불려간다. 그리고 ‘학교급식 사진을 더 찍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통보받는다.

마사는 다음날 ‘이제 안녕’(goodbye)이라는 글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 글은 인터넷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금지 결정을 내린 당국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주 나는 두 개의 특별한 행사에 참석하면서 그 사건을 다시 떠올렸다.

하나는 11월26일 밤 열린 ‘사회혁신기업가 셀프어워드’였다. 기업을 세워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없는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내고 사람을 모아 만든 행사였다. 사회적 기업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고 격려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의미있는 새 출발을 한 이에게는 ‘신인상’을,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이에게는 ‘역경상’을 주면서 행사장에는 눈물과 웃음이 오갔다. 상 주는 사람과 상 받는 사람이 동료로서 어깨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하나는 11월30일 오후 열린 ‘소셜픽션 콘퍼런스’였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미래에 관심 있는 이들이 스스로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크라우드펀딩으로 행사 비용을 모았고, 시민 100여명이 모여 다섯 시간 반 동안 모두 빠짐없이 발언했다.

새로운 사회가 금세 가능할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소셜미디어는 그 중요한 이유로 지목됐다. 정치적으로는 시민이 직접 발언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 보였다.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처럼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주인이 되는 기업이 세를 불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국가기관들의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이 알려졌다. 대기업이 블로거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에게 돈을 주고 마케팅활동을 펼치게 하는 일은 일반화됐다. 사회혁신을 꿈꾸던 기업가들도 제품을 구매하는 정부나 지자체나 대기업과의 갑을관계 앞에 직면해야 했다. 새로운 사회의 꿈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우선 정치를 보자.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소셜미디어를 새로운 광고판으로만 인식했다. 기업은 어떤가. 블로거들을 새로운 마케팅 부서원으로만 여겼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하청업체들처럼 여기지는 않았나. 토크콘서트와 트위터에 골몰했던 명사들도 무대의 중심에 서서 일방적으로 발언하기만 하지 않았나. 실은 모두가 청중을 원했을 뿐, 무대의 주인을 찾으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게 아닌지. 모두에게 성찰이 필요하다.

사회혁신기업가들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격려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소셜픽션을 그리겠다고 모여들었던 시민들은 그래서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 비용을 치렀다. 그리고 발언했다. 그래서 힘이 실린다. 만일 정치와 대기업이 이런 이야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마음을 열고 주머니를 열어 그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마사 페인은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당국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다시 밝혔다. 돈이 모여들어 굶주린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외견상 블로그와 소셜미디어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초등학생 소녀의 이야기할 자유를 지켜준 이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이 바로 주인이다.

이원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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