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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9 19:06 수정 : 2013.12.09 21:34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한 시사주간지에서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원고청탁이 왔다. 그때 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어볼 것을 권유했다. 권력과 정의, 인륜과 원한의 문제를 이 작품처럼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좋은 책 없냐 하면, 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추천하곤 한다. 모든 그리스 비극이 그러하듯, 주인공 오이디푸스 왕의 몰락은 오만함(hubris)에서 왔다. 그는 역병이 들끓고 선왕이 사라진 테베 왕국의 혼란을 자신이 완벽하게 풀 것이라고 말했다. 오이디푸스 왕은 도덕주의자인 동시에 법치주의자였다. 특히 국가기강 문란 및 반인륜 범죄에 대해 엄격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물론 그 누구라도 엄벌에 처할 것임을 단언했다. 특히 ‘선왕’을 죽인 자는 끝까지 추적해 그 ‘원한’을 풀 것이라 ‘공언’했다.

그때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양치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것은 워낙 은밀한 표정이어서 무대 위의 누구도 이 웃음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다. 천사든 악마든 복선은 늘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이후 전개되는 모두가 아는 오이디푸스의 절규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더불어 상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의 비극이다. 안티고네는 한국으로 치면 ‘심청’과 같은 지극한 효녀였다. 조선의 심청은 기껏해야 뺑덕어미를 기겁하게 하는 정도였지만, 안티고네는 아버지를 배신한 자를 기필코 응징하리라 다짐했다. 설사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라도. 그런데 새 왕이 된 삼촌의 손에 그의 오빠가 반역자로 몰려 죽었다.

왕이 된 삼촌은 말했다. 테베에서 ‘반역자’로 죽은 자는 땅에 매장될 수 없다. 만약 이 ‘법’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도 죽이겠다. 삼촌은 ‘공안통치’를 계속했다. 아무리 정적이라지만 조카가 죽었는데 어떻게 저승 갈 권리까지 빼앗는단 말인가. 안티고네는 분노했고 또 절망했다. 삼촌의 ‘법’과 자신의 ‘인륜’ 사이에서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안티고네는 오빠를 땅에 매장했다. 그 결과로 그도 죽음을 맞았다.

<오이디푸스 왕>을 읽은 이후, 그의 운명을 더 알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젊은 날의 영웅이었던 오이디푸스의 추한 노년이 잘 드러난다. “안티고네야, 살려줘, 날 지켜줘, 아비는 너만 믿는다” 하는 식의 가련한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3부작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이렇게 요약된다. 1)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자기만 모른다. 2)인간 운명은 수수께끼다. 3)그러나 오만함의 결과는 파멸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오이디푸스를 재론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하고 싶다. 지난 1년 동안 이 정권의 상층부는 ‘법’과 ‘인륜’ 모두를 위험에 빠뜨려 왔다. ‘법’을 상징하는 검찰총장을 확인되지 않은 ‘인륜’을 근거로 날려버렸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향해 ‘누나’ 하는 자들이 둘 이상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나는 오이디푸스도 안티고네도 개인적으로는 뜨거운 ‘진정성’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나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들처럼 속 시원하게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2600년 전의 세계와 오늘이 현격하게 다르듯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 정부는 이명박 정부만한 연기 역량도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아침이슬’을 불렀던 참모들의 고언에 한번쯤은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전락 직전의 오이디푸스처럼 당당하고 오만하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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