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12.29 19:12 수정 : 2013.12.29 19:12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배려가 있다. 개그맨 유재석에 대한 얘기다. 방송을 하다 보니 방송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함께 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른바 여러 명의 패널이 나와서 떠드는 ‘떼 토크’를 보면 튀는 경쟁이 인정사정없이 이뤄진다. 점잔 빼고 있다가는 말 한마디 못하고 끝나버린다. 그런 현장에서 그는 배려로 최고가 되었고, 배려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새해 첫날 해돋이 함께 보고 싶은 남자 연예인 1위에 선정된 것도 그의 배려 마인드 덕분이리라.

방송에서 만난 한 친구는 말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자신이 없을 때 주눅이 들어 우물우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다른 사회자들은 시청률을 위해 자르거나 무시해 버린다. 하지만 유재석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도 들어주고, 그걸 토크의 소재로 만들어준다. 이 친구의 말에서 확인되는 건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다. 더불어 같이 가자는 얘기다. 일종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라 할 수 있겠다. 그와 일면식도 없지만 이런 리더십을 가진 친구라면 마주 앉아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이젠 주연만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다. 역할은 조연이지만 그 개성이나 존재감, 인기는 주연을 앞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도 이제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거대 매스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얼마든지 주체적으로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수평적 네트워크 시대다. 이런 시대엔 나를 따르라는 식의 권위주의나 일방적 강요는 먹혀들기 어렵다. 따라서 리더십도 시대 흐름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유재석이 보여주는 진행 스타일,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리더십 스타일은 시대 흐름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메르켈에서 대처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을 두고 평가하는 비유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무티(Mutti), 곧 엄마 리더십이다. 지난 9월 총선에서 3연속 집권에 성공한 메르켈은 대부분의 정책을 양보하면서까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이끌어냈다. 게다가 사사건건 자신에게 대들던 폰데어라이엔을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놀라운 포용력이다. 가족을 위해 참고, 인내하고, 포용하는 ‘마더십’을 보여주니 엄마 리더십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메르켈의 포용이나 유재석의 배려는 같은 것이다. 더불어 같이 살자는 의미다.

대처는 어떤가.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The Lady’s not for turning) 그의 소신정치를 표상하는 모토다. 소신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살고, 집권 후기 설득이 없는 일방통행의 리더십을 펼친 탓에 ‘선출된 독재’(elective dictatorship)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의 몰락을 낳은 주민세도 홀로 고집 피워 관철시킨 것이었다. 그 결과 대처 내각에서 재무장관과 외무장관 등 온갖 요직을 섭렵한 제프리 하우와 같은 측근조차도 그의 곁을 떠났다. 하원의장으로 있던 그가 사임하면서 던진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대처 정부의 각료들은 대처 개인이냐 혹은 국익이냐의 ‘비극적 충성의 갈등’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의 사임 이후 3주 뒤 대처는 총리에서 물러났다.

제아무리 현자라도 세상에 언제나 옳은 사람은 없다. 설사 그가 언제나 옳다고 할지라도 다수가 뜻을 모아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면 그 옳음을 강요할 수 없다. 대통령을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옳고 그름의 판정권을 허용하지 않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결국 공존이고 타협이다. 연말연시, 박 대통령이 짬을 내 무한도전을 보면서 배려와 공존의 유재석 리더십을 좀 배우면 좋겠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