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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30 18:37 수정 : 2013.12.30 18:37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청소년들은 시민이다. 성인들은 이들을 철없는 학생으로 간주하지만, 대다수의 성인들이 직장인이기에 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듯, 청소년들 역시 시민인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완전한 시민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투표권·피선거권·공무담임권 등의 ‘연령 제한’은 시민권의 완전한 실현에 필요한 일정한 준비를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시민에게는 의무도 있다. 납세·병역의 의무가 대표적인데, 청소년 시민들에게 이 의무조항은 역시 ‘연령 제한’에 따라 유예되는 항목이다.

시민 주체의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청소년기는 시민적 권리와 의무, 가치와 덕성에 대한 ‘발견’과 ‘형성’, 그리고 ‘탐구’의 시기다. 때문에 민주주의가 착근된 선진국가의 모든 교육과정에서는 이 시민적 역량과 가치의 문제를 교육과정 안에서 섬세하고 체계적으로 체화할 것을 요구하며, 청소년들이 학교와 일상생활 모두에서 시민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교육현장에서 청소년들이 시민적 역량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교육현장의 변모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의 중등교육 현실을 보면, 학습공동체인 학교의 운영원리가 ‘규제주의’와 ‘권위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집권세력이 진보냐 보수냐를 막론하고 성인 시민들은 청소년 시민들을 ‘규제’ ‘관리’ ‘보호’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시민적 역량이 형성되는 기본단계는 ‘자율’ ‘자치’ ‘자립’의 역량이다. 동시에 개인적 세계를 뛰어넘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운영원리를 스스로 만들고 준수하는 ‘자기규범주의’를 보편화해야 한다. 가령 학교공간에서 문제가 되는 흡연, 스마트폰 사용, 학생폭력 등의 원인과 해법, ‘게임 셧다운제’를 포함한 이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탐구하고 숙의하고 원칙을 정하는 일들이 학교공간에서 가능해져야 한다.

시민 주체성의 본질은 정치적 주체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청소년 시민들은 교육공간 안에서 정치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가치를 학습하고 실천해야 한다. 학교공간과 사회공간은 성인 시민에게 일터와 가정이 그렇듯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시민적 세계는 일상으로부터 지구적 차원까지 촘촘하게 맞물려 있다.

학교공간에서 학생들은 정치적 주체로서 ‘정치적 세계’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준비자이자 실천가로 존중되어야 한다. 시민적 역량은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기에, 민주주의가 착근된 선진국가들의 공교육 과정에는 ‘시민교육’이나 ‘정치교육’과 같은 형태로 시민성 교과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과정에 ‘시민성’의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와 비학교 공간에서의 ‘정치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청소년 시민들의 시민성을 증대하기 위해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3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교사에 의한 강제교화·주입 금지의 원칙. 둘째, 사회적 갈등을 교실공간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는 논쟁성의 재현 원칙. 셋째,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자신의 최종적 결론을 드러내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정치적 진보와 보수, 집권세력의 향방과 무관하게 이 원칙은 모든 교육현장에서 강력하게 지지된다. 이런 원칙하에서 독일의 청소년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자기 문제 삼아 발언·숙의·행동한다. 전후 독일 민주주의가 강건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억압하는 것은 학교공간의 비민주성과 비시민성을 보여준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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