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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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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지만, 희망은 너무 멀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비관뿐이다. 우선 주변 환경이 어둡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말한다. 그러나 핵과 경제발전도 병진하고, 자위력도 강조했다.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외부의 요구와 북한의 변화 가능성 사이에는 언제나 격차가 크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허망한 기다림으로 시간을 낭비한 사례는 이명박 정부로 충분하다. 다만 장성택 처형이 남긴 여운이 크다. 주변국의 대북정책 결정에서 부정적 여론의 영향력이 커졌다. 오바마 행정부의 협상 의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미국은 한국과 대립하면서, 북한과 협상할 생각이 없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중국의 중재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중요하다. 기대를 하는 의견도 있다. 국내정치의 돌파구를 남북관계에서 찾지 않겠느냐. 혹은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북방경제로 눈을 돌리지 않겠느냐. 합리와 상식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사실 보수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정책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일부 거리의 극우세력을 제외하고, 다수의 국민은 지지할 것이다. 야당들도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그렇게 쉽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두환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무산된 이유가 있다. 노태우 정부도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는데 왜 실패했을까? 정책 전환의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유능해야 실력 있는 관료를 선택하고, 효율적인 정책조정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북한과 협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신뢰가 없는 남북관계는 전진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후퇴한다. 후퇴할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전진을 위해서는 유능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보수적인 여론을 극복하고, 관료들을 설득해서 끌고나갈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비관적인 이유가 있다. 현재 야권에서 평화의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 있는가? ‘안보는 보수적으로’ 그렇게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 ‘안보를 경시해서 지난 대선에서 졌다’는 거짓말에 놀아나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이념을 기준으로 외교안보를 보는 것은 한국의 일그러진 극우세력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이념이 아니다. 이념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반공주의자 닉슨이 데탕트의 시대를 열고, 진정한 보수주의자 레이건이 탈냉전의 길을 열었던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고, 방법이며, 그것을 실천할 능력이다. 분단 문제를 국내정치적 득실로만 따지는 사람이 지도자로 나서는 정치현실은 또다른 비극이다. 평화의 철학을 가진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야권의 정치인들조차 대중의 정서에 올라타 흔들거릴 때 노구를 이끌고 평화의 길을 제시해주던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존재가 그립다. 올해 한반도 정세는 어둡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가치를 성찰하는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기다려본다. 비관의 시대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까? 그러기를 바란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이제는 역사에 전진기어를 넣어야 한다 [오피니언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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