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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06 18:45 수정 : 2014.01.06 18:45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독일·일본과 전쟁을 하던 1942년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전시정보국을 설치하여 대국민 정보 조작을 자행하자, 야당인 공화당은 전시정보국을 대통령의 ‘선거기관’으로 규정한 다음, 예산을 삭감하고 국내 파트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였으며,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아예 기관 자체를 없앴다. 이후 중앙정보국(CIA)이 칠레, 니카라과, 인도네시아의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마약 밀매에 개입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더러운 정치’를 계속 벌여왔지만, 국내 선거나 정치에 개입하여 야당을 무력화시키는 등의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언제나 ‘방첩’의 명분으로 군과 경찰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왔다. 국군 창설기에 이승만 정부는 군에 정치국을 설치하려다가 미국의 반대에 부딪쳐 ‘정훈국’으로 명칭을 바꾸어 존속시켰고, 이후 방첩대는 이승만의 정적 제거나 사찰 도구로 기능하였다. 5·16 직후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곧바로 중앙정보부를 만든 이유도 북한의 위협보다는 국내 정치용이었고, 이후 선거개입은 물론 야당과 재야인사 탄압에 활용하였다. 1948년 이후 지금까지 군 특무대(기무사), 경찰 사찰과(보안과), 중앙정보부(국정원)가 정말 얼마나 많은 간첩을 잡아서 국가를 지키는 역할을 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이들의 정치공작, 사찰, 선거개입, 반인륜적인 행위의 기록을 쌓으면 산을 이룰 것이고, 고문, 폭력, 협박, 간첩조작 등으로 가족을 잃거나 육체적 정신적 불구자가 된 사람들의 눈물을 모으면 강이 될 것이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안기부(국정원)는 선거나 정치공작에 개입하였고, 1992년 선거 직후에는 “정치 관여를 일체 중단하고 산업정보 수집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능을 개편하겠다”고 발표하고 명칭까지 바꾸기도 했으나 그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정원의 국내 정보 부서를 없애고, 수사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이라는 이름 아래 ‘삼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댓글 공작과 각종 국기문란 사태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번 여야 합의 국정원법 개정안에서 국내 파트 폐지나 국내 심리전 활동 제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고 사이버심리전과 관련해서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정치관여 행위를 처벌한다는 내용만 들어갔으며, 정치관여에 대한 처벌만 약간 강화되었다. 국정원의 불법 반인륜적인 댓글 공작이나 그것에 대한 국정원장이나 국방부의 적반하장 격의 태도, 박근혜 대통령의 자세를 보건대 이런 법안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한 공안검사 출신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공공연하게 떠들 수 있는 나라에서,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라”는 식의 문건을 만드는 의혹을 갖는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의 이름으로 또다시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만약 폭로되어도 개인 일탈이라고 둘러댈 것이다. 이들에게 야당은 내부의 ‘적’이며, 야당의 집권 가능성은 곧 ‘적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래서 대북심리전과 국내 정치는 구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법학자 에른스트 프렝켈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이중국가’라 표현했다. 정부, 정당, 의회 등으로 구성된 국가가 있다면, 그 위에서 국민의 감시와 통제, 법의 제약을 받지 않고 활동하는 정보 수사기관이 상위의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전시도 아닌데 상위의 국가가 자신이 속한 ‘하위의 국가’의 작동을 사실상 멈추는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법안을 받아들인 민주당은 도대체 뭐 하자는 집단인가?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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