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16 19:22
수정 : 2014.01.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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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오늘의 교육>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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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은 밀양 송전탑 전체 구간을 통틀어 피해가 가장 큰 마을로 손꼽힌다. 마을 바로 뒷산 113번 송전탑으로 공사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경찰은 고답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공터에 숙영시설로 쓸 컨테이너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형광색 경찰 제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주민들에게 경찰 숙영지가 마을 한복판에 조성된다는 것은 정말로 “허패(허파) 디비지는” 일이었다. 멀리 창녕 부곡온천 리조트까지 빌려 숙박지로 쓰던 경찰이 굳이 이러고 나서는 것에 대해 ‘한전 대신 우리랑 싸우자’는 메시지로 주민들은 받아들였다.
1월6일과 7일, 대충돌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컨테이너 사이로 들어가려 했고, 질질 끌려나왔다. 노인이 작대기를 휘두르면 경찰은 작대기를 빼앗으려 하고, 노인은 기운에 밀려 넘어진다. 경찰이 잠시 물러나자 주민들이 비닐하우스 골재를 뽑아와서는 숙영지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려고 한다. 다시 경찰이 달려들고, 나도 주민들도 사지가 붙들린 채 들려나간다.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몸을 비틀어봐도 내 육신은 버둥거릴 수조차 없다. 내 자존감, 전인격이 뭔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다. 이제 경찰은 논바닥에 떨궈놓은 이들을 다시 둘러싼다. 좁디좁은 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진다. 질식할 것 같은 먼지가 피어오른다. 탈진할 무렵이 되어서야 경찰은 우리를 풀어준다. 그사이 두명이 연행되고, 두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격앙된 주민들은 도로를 점거했다. 경찰과 한전 차량은 보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모닥불을 지펴놓고 밤을 새운 다음날 아침 7시께, 마을 회관에서 시래기국밥을 해왔다. 경찰버스 10여대가 그 앞에서 차례로 멈춰 섰다. 수십명의 경찰력이 식사하는 주민들을 에워싸고 주민들은 태연하게 밥을 떠 넣는다. 내 머릿속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장면, 해머를 들고 온 철거반원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행복동의 난장이 아버지와 영희네 가족들이 ‘최후의 식사’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런 문학적 상상을 박살내듯이 경찰은 식사를 마칠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식사중인 노인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끌려나가는 노인들은 먹던 국밥을 흩뿌렸고, 그것은 경찰 제복에도, 내 옷에도, 그리고 노인들 자신의 옷에도 묻었다. 경찰 한명이 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틱 밥그릇을 세차게 걷어찼고, 두쪽으로 갈라진 밥그릇은 아스팔트 위로 나뒹굴었다. 뭔가에 베인 듯 날카로운 상처가 내 마음속에 아로새겨진다.
할아버지 한분이 활동을 시작했다. 외바퀴 손수레를 밀고 다니며 경찰 지휘관쯤 되어 보이는 이들에게 가서는 ‘태워 주꾸마, 어서 타그라’ 하면서 들이대고, 기겁한 경찰은 도망친다. 이제는 썩은 나무둥치를 모아서는 경찰이 도열해 있는 대오 앞에 와르르 쏟아놓기를 반복한다. 처절한 1인시위였다. 그러고는 일장연설을 한다. 연설이라기보다는 맥락 없는 넋두리였다. 그 끝에 노인은 노래를 부른다. 뜻밖에도 ‘켄터키 옛집’이다.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타령처럼 늘어지는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는 ‘검둥이 시절’에 온힘을 다해 울분 같은 악센트를 주었다. 노래를 마친 뒤에 그가 외쳤다. “내가 왜 이 노래를 불렀느냐. 정치하는 놈들은 백인이고, 우리 겉은 놈들은 껌디(검둥이)다 이기라. 껌디보다 더 못하다 이기라.” …… 듣던 내 눈앞이 흐려진다. …… ‘잘 쉬어라, 쉬어. 울지 말고 쉬어’ 밀양의 노인들에게, 박해와 모멸의 짐승 같은 시간을 견디는 그들에게 안식을 허하라.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대체, 왜들 이러는가.
이계삼 <오늘의 교육>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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