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이해 충돌이 가속화하고 있다. 핵심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다.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민주당과, 대선 공약을 뒤집고 반대를 외치는 여당의 힘겨루기가 주요 모양새다. 정의당과 노동당은 정당의 책임정치를 근거로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도 최근 부분적 폐지안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당공천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각은 점입가경이다.
권력투쟁의 장에서 정치적 셈법을 무어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득권을 놓으라는 자와 놓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은 당연한 수순이다. 지방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 6·4 선거 이전에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장악력 유지에 대한 욕망이 초기의 정당공천제 폐지 동력과 여론을 묘하게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투쟁을 불사한 강력한 염원으로 부활한 지방선거 당시부터 정당공천 여부는 논란거리였다. 2002년까지 4번의 선거에서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중앙정당의 입김은 정당공천과 무관하게 지방을 장악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작용했다. 내천이라는 말도 이때 등장했다. 현실적으로 중앙정당을 대신할 정치력 생산 지대가 마땅찮았던 현실의 발로였다. 지방정치의 부활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염원이 풀뿌리의 자생적 토양 부재 속에 표류한 시기였다.
2006년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타협으로 정당공천제가 채택되었다. 지방의원 급여 문제가 타협의 지렛대였다. 야합이라는 여론을 지켜낼 시민의 동력은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지방선거는 자치의 실현이라는 명분하에 중앙정치의 하수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능한 정치 지망생들의 자리 만들기라는 명분마저도 국회의원들이 지역 토호와 결탁하면서 충성 경쟁의 낚싯대로 사용될 뿐이었다. 지역주의가 심화되고, 중앙에 줄을 대어 기생하는 함량 미달의 지방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방자치의 성장은 요원한 가운데 지방권력이 각종 비효율과 비리의 진원지로 드러났다. 국민들의 지방자치제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이 팽배해져만 갔다. 정당공천제가 주요 이슈가 되어버린 이유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희망의 씨앗은 자라고 있었다. 그동안 시민단체의 성장과 각종 정치참여 매체의 대중화가 중앙을 넘어서서 지방에까지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지금은 웬만한 지방 소도시에도 각종 시민단체와 네트워크가 조목조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정당공천 제도에 힘입어 지역정치의 장에서 빼어난 활동을 해온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 다수 있다. 정당민주주의의 원칙과 정당의 책임정치도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중앙정당의 제어 탓에 중앙과 지방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지방정치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있는 실정도 살펴야 한다. 진보정당의 일부 지역 주자들도 이제는 인물 대결로 해볼 만한 상황이 되었으니, 차라리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지방정치에 필요한 인재는 소위 중앙식 정치엘리트가 아니라 이웃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 이제 그럴 만한 시기가 되었다는 상황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풀뿌리는 알 듯 모를 듯 낮게 자리를 내린다. 결코 화려하지 않아도 결국 자생력을 키워내고, 들판을 푸른빛으로 채워 나간다. 지역주의와 중앙집중화가 아수라의 얼굴처럼 하나의 기득권으로 얽혀 우리의 정치지형을 숨막히게 옥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격적인 자생과 확장을 담보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정훈 변호사
기초단체 공천폐지 논란, 대통령이 답하라 [성한용의 진단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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