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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5 18:36 수정 : 2014.02.25 18:36

이원재 경제평론가

“또르르~” “아빠, 젓가락이 또 굴러가요.” 한 달째 살고 있는 미국 워싱턴 근교의 아파트는 바닥이 고르지 않다. 식탁 위 젓가락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높은 책장을 벽에 붙여 놓으면 틈새가 벌어지는 걸 보니 수직도 맞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1965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골격만은 정말 튼튼하다. 층간소음 걱정도 없고 외부의 찬바람도 들지 않고 습기도 차지 않는다. 두껍지 않은 벽에 한 겹의 창으로도 그렇다.

서울에서 살던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은 늘 주요 이슈였다. 겨울이면 늘 습기와 곰팡이를 걱정해야 했다. 이중창으로도 외부의 찬 기운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 물론 수평과 수직은 잘 맞았고 마감은 아주 깔끔했다.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중심과 골격은 당장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래도록 큰 영향을 끼친다. 여기에 얼마나 우선순위를 두고 건물을 지었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 듯하다. 집의 기본 기능을 염두에 두고 중심과 골격에 집중해 지은 건물은 처음 만나면 거칠어 보이지만 오래도록 튼튼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곳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은 약삭빠른 건물은 부동산 중개인과 방문할 때는 세련되어 보이지만 오래 살수록 하자가 보인다.

대조하다 보니 워싱턴의 아파트가 지어진 시기의 사회와 겹쳐 보였다. 1960년대 미국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중산층이 사회의 중심에 있었고 소득 불평등이 적었다. 제조업이 나라 경제의 골격으로 버티고 있었다. 크루그먼은 이 시대를 ‘대압착 시대’(Great Compression)라고 부른다. 중심과 골격이 튼튼하게 확립되던 시기였다.

내가 살던 서울의 아파트가 지어진 2000년대 한국은 본격적으로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곳은 빠른 속도로 화려하고 세련되게 변해갔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가느라 중심과 골격을 잊을 때가 많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와 2만달러를 연이어 돌파했지만, 본격적으로 소득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며 세계경제에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중소기업들의 형편은 눈에 띄게 어려워졌다.

물론 1980년대 이후 미국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제조업과 중산층의 사회에서 벗어나 금융과 부유층의 사회를 향했다. 소득 불평등은 훨씬 더 커졌고 양극화로 중산층은 무너졌다. 미국도 이제 금융 엘리트와 기업 경영자들이 부와 권력을 모두 차지한 과두제 사회가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는 미국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중산층이 중심인 튼튼한 사회에서 시작한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들은 정당성이 약한 중심을 형성했다. 중앙집중과 상명하달이라는 낡고 거친 패러다임으로 골격을 형성했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그 골격으로 나라를 버티면서 시장주의라는 마감재를 들여와 하자를 감추고 있다.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을 미국 방송뉴스를 통해 보면서 다시 그 생각을 떠올렸다. 중심과 골격을 바로잡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당장 눈에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여도 비극은 늘 눈앞에 있다. 건물뿐 아니라 경제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재정난에다 연방정부 셧다운까지 온갖 푸닥거리를 치르면서도 미국은 아직 버티고 있다. 50년 전 지어진 아파트는 여전히 수도 워싱턴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제조업과 중산층 복원은 오바마 정부의 가장 큰 화두다. 앞서 쌓아둔 중심과 골격이 나라를 버티고 방향을 준다.

한국 사회는 어디서부터 중심과 골격을 만들어가야 할까? 당장의 실적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찾는 일을 시작할 때가 됐다.

이원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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