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2 18:46
수정 : 2014.03.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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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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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가장 확실한 사실(fact)이자 가장 강력한 상징(symbol)은 사람이다. 사람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정책이든 노선이든 결국 사람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한 정부의 성격 또는 정체성을 가늠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그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 또는 최고 권력자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당시 한나라당은 위기 탈출법을 ‘박근혜’에게서 찾았다. 주류 친이(친이명박계)가 그간 대립하던 라이벌 그룹 친박을 넘어 그 몸통에게 자발적으로 모든 권한을 넘겼다. 위기의 탈출을 어떤 제도적 방안이 아니라 인물 요인으로 찾은 것이다. 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새로운 인물을 발탁함으로써 위기 극복을 넘어 총선 승리까지 만들어냈다. 이때 박근혜 위원장이 등용한 깜짝 인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종인 전 의원과 이상돈 교수다. 하버드대 출신의 청년 이준석과 대법관 출신의 안대희 등 다른 인물도 없지 않았지만 2012년 총·대선 시기 박근혜 캠프의 간판은 역시 김종인·이상돈이었다.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인 김종인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줄기차게 4대강 사업을 비판해온 이상돈 교수는 엠비(MB) 정부와의 차별화를 유권자들이 쉽게 연상하게 하는 선명한 깃발이었다. 이들은 대선 때까지 박근혜 정부의 방향을 읽게 하는 인물 코드로 기능했다. 이를 통해 야권이 누리던 경제민주화와 반엠비 이슈에서의 이점이 많이 희석됐다. 이미지 측면에선 오히려 박근혜 후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대선 캠페인의 얼굴이던 김종인·이상돈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와 함께 뒤로 밀렸다. 대신 남재준, 김기춘이 박근혜 정부의 얼굴로 등장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군 출신으로 안보 우위의 국정 운영을 밀어붙였고, 김기춘 비서실장은 서울법대에 검사 출신으로 공안 프레임을 주도했다. 박 대통령 취임 1년을 짓눌렀던 북방한계선(NLL),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국정원의 대선 개입,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등의 이슈를 둘러싼 논란은 김기춘·남재준에 의해 제어되었다. 김기춘과 남재준이 대통령으로부터 얼마만큼의 신뢰를 받든 상관없이 시민들에게 비쳐지는 대중적 인식의 차원에서 그들은 박근혜 정부를 대표하는 상징 인물들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수백개의 공약을 잣대로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더 쉽고 간명한 방법은 상징 인물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김종인·이상돈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잊힌 존재이거나 여권의 금기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또 김기춘·남재준이 정부를 움직이는 핵심 실세라는 사실도 안다. 이처럼 인적 상징으로 보면 대선 전과 후의 박근혜 대통령은 완전히 다르다. 경제민주화, 복지,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서 안보, 성장, ‘이명박근혜’로 돌아섰다.
선거민주주의에서 집권 전후가 이처럼 달라진 예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처럼 완벽한 터닝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보이는 지표는 그의 지지 기반이 무너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매우 이례적이다. 결국 성공한 표변인 셈이다. 이유가 뭘까? 야권이 김종인·이상돈 노선을 중심으로 프레임을 짜지 못하고, 김기춘·남재준 노선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통일이 대박이다’라는 대통령의 말에 빗대면, ‘복지가 대박이다’라는 대항 프레임으로 맞서지 못했다는 의미다. 또 야권엔 시대 과제를 상징하는 인물, 그런 인물을 끌어들일 리더십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최대 행운은 야권의 무능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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