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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03 18:34 수정 : 2014.03.03 18:34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기도 생활도 벌써 4년째다. 신도시도 아니고, 지하철도 없고, 폭설이 내리면 곧잘 길이 끊기기도 하는 ‘어떤 경기도식 생활방식’을 아시는지.

역에서 내리면 북부와 남부 역이 있는 흔한 국철 출구에서, 이쪽인가 저쪽인가 버스 정류장을 찾아 많이도 헤맸다. 장소의 감각이라는 게 일종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어서, 드높은 외래어의 ‘랜드마크’가 아니라, 길을 가늠할 파출소가 어딘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이 사십이 넘어 처음 경험한 경기도식 생활방식은 경악이었다. 매일의 출퇴근길 역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음, 이래서 자가용을 사는 건가 하는 뚜벅이족의 불편함도 얼마간 있었다. 아마도 가장 기묘했던 것은 인구 40만의 이 도시에, 도대체가 가족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버스를 타고 ‘여우고개’를 넘으면, 비유컨대 그곳은 ‘섬’이었다.

그럼 너는 그곳에 왜 갔느냐? 서울에서 아이를 키울 수가 없었다. 고맙게 처갓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는데,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한바탕 고민이 깊어졌다. 공립유치원은 턱없이 부족해, 대기표를 뽑기 위해 새벽부터 찬바람을 맞으며 줄을 섰지만, 결국 등원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곳의 생활은 새로웠다. 저수지가 있었고, 텃밭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도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을 걷는 아들 녀석과 감자도 심고, 고추도 따고, 참외도 심으면서 막걸리를 먹다 보면 나도 제법 농군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목가적 풍경은 사실 드문 것이었고, 나는 점점 ‘어떤 경기도식 생활방식’에 지쳐갔다.

그러던 내 삶에 변화가 온 것은 ‘공동육아’를 시작한 이후였다. 살고 있는 곳이 논밭이고 바다인데, 무슨 ‘공동육아 협동조합’이냐 하고 반대하다가 결국 조합원이 되었다. 이게 내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느냐 하면, 최초의 감정은 체념 비슷한 것이었다. 그것은 세 차원에서 왔는데, 첫째, 조합원들 대부분이 교사를 포함한 중산층 아닌가 하는 당혹. 둘째, 육아를 제외하고 조합원들이 전인격적으로 만나고 있는가 하는 의문. 셋째, 아이들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오히려 부모들이 민감하게 대행하고 있는 듯한 정념의 뜨거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체념’이란 어찌 보면 나 자신의 기묘한 ‘허위의식’,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이런 문제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협동조합’의 현재와 미래를 음미하고 있다 하는 식의 ‘자기합리화’의 소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나는 ‘대중적 공동육아’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소부르주아적 삐딱선이랄까.

지난 주말에는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학부모들과 함께 터전을 대청소했다. 생각해 보니, 교사도, 포클레인 기사도, 비정규직 교수도, 중소기업의 영업사원도, 또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공인중개사나 변호사 등 연령과 직업이 다른 조합원들의 이름을 아직도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가 ‘별칭’을 부르면서 사회적 칸막이를 넘어서는 일이 이제는 익숙하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기우뚱한 믿음이다. 물론 육아를 매개로 한 공동체가 더 넓은 사회적 공동체로 확산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경험과 실천, 그리고 사색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 새끼냐, 당신 새끼냐’ 하는 사적 가족의 경계를 혼돈을 동반하면서 넘어가는 이 창조적인 과정은 불가피한 성숙의 통행료다. 양육에 동반되는 사적 욕망을 넘어 부모와 교사, 마을이 공육(共育)의 가치를 십여년 동안 모색해왔다는 점은 놀랍게 느껴진다. 경기도식 생활방식에도 숨은 매력이 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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