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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05 19:09 수정 : 2014.03.05 19:09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박근혜 정권 1년? 밥을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시스템에 따라 한 것을 제하면 현 정권이 행한 것이라고는 오직 두 가지다. 선거 부정을 철저히 은폐하며 권좌를 유지한 것과, 노동을 가혹하게 배제하고 탄압한 것이다. 그 덕에 촛불은 1년 내내 타오르고, 노동자들은 하늘로 올랐다. 어떤 노동자는 거미에게 체액을 몽땅 빨린 나비처럼 희망을 모두 소진하고 자살하였고, 어떤 이들은 탄압의 후유증으로 병이 걸려 죽음을 맞았으며, 또 어떤 이는 동지의 죽음을 막고자 송전탑과 굴다리로 올랐다.

이 시대의 핵심 모순을 들라면 단연 철저한 노동 배제와 탄압, 이로 인한 노동자의 생존 위기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의 야만을 규제하던 모든 가치와 제도를 자유의 이름으로 풀어버리고 자본이 마음대로 지배하고 착취하는 길을 열었다. 1%들은 금융과 신용을 조작하여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시장을 독점하여 폭리를 취하고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남발하면서 더욱 야만적으로 99%를 착취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다른 나라들이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인식하고 유턴을 할 때 그 극단으로 치달았고, 박근혜 정권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몇몇 공공영역마저 사영화하고 진보적 의제와 실천을 봉쇄하는 데 모든 권력을 동원하고 ‘성역’인 민주노총까지 침탈하였다.

자본-국가-보수언론-대형교회-어용학자들로 이루어진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지고, 이에 맞설 진보는 괴멸되었다. 이 카르텔은 행정, 입법과 사법은 물론, 언론과 지성, 담론을 장악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이들을 동원하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은 조작도 서슴지 않는 마름으로 둔갑하였고, 사법부는 노동은 죽이면서 권력과 자본의 죄를 덮고 그들의 야만스런 폭력을 합법화하는 형식기구로 전락하였으며, 대다수 언론은 국정 홍보 기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들만이 아니라 시민과 진보언론마저 노동의 배제에 동참하였다. 아주 쓸쓸한 풍경화 한 장면. 대우조선해양에서 넉 달 사이에만 산재사고로 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엄청난 대형 참사인데, 이를 규탄하고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작년에 서울의 검찰청 앞에서 열었는데 종이신문은 물론, 인터넷신문을 포함하여 단 한 곳의 기자도 오지 않았다. 얼마 전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5대 종교의 평신도들이 모여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어도, 50여 진보단체의 대표가 모여 희망버스를 타자는 기자회견을 해도 <한겨레>조차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 한국 사회에 ‘잠수함의 토끼’가 사라졌다. 권력기관은 자본-권력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이를 견제할 언론, 야당, 진보진영도 제구실을 못한 지 오래다. 대중은 생존 위기와 해고의 공포 속에 자유로부터 도피해 권위에 의존하고, 노동자마저 신자유주의의 경쟁과 탐욕을 내면화하고 종파에 얽매여 투쟁성과 연대 정신을 상실하였다. 이 처절한 노동 배제의 종말은 파국이다. 견제가 사라지면 자본은 괴물이 되고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조작과 폭력에 의존한다. 전 정권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 24명이 사회적 타살을 당하였다면, 이 정권에서는 세 모녀의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 어두움 속에서도 길을 밝히는 것은 희망의 빛이고, 썩어 문드러진 세상에 균열을 가할 힘은 연대다. 노조 파괴와 용역 폭력, 부당 해고와 구속에 맞서서 유성기업의 두 노동자가 굴다리에 올라 농성한 지 3월15일로 154일이 된다. 그날 10시에 대한문 앞에서 희망버스가 떠난다. 연대의 힘으로 처절한 노동 배제에 종언을 고할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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