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3 18:50
수정 : 2014.03.1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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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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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이란 남을 헐뜯는 행위다. 중상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모략이라는 글자가 붙는다. 모두 ‘근거 없는’이라는 말과 한패다. 지난달 남북한은 고위급 회담에서 비방 중상 금지를 합의했다. 북한은 일제히 대남 비난을 중단했다. 그리고 남쪽의 합의 위반 사례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보수단체의 전단 살포와 각종 언론보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 그리고 인권문제 비판 등이다.
합의를 했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다. 남쪽 대표들이 이 말의 역사와 의미를 알고 합의했는지 궁금하다. 알다시피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라는 표현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2항에 들어 있다. 그 말 앞에는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라는 구절이 있다. 비방 중상을 계속하면 신뢰를 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고위급 회담 합의문도 똑같은 문장이다. 신뢰를 앞세우는 박근혜 정부에 북한은 신뢰의 증거를 묻고 있다. 북한은 계속 합의 위반을 지적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관계 악화의 책임을 남쪽에 전가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북한의 주장에 근거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 북한은 언론보도를 문제 삼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음을 잘 알 것이다. 북한은 정부가 결정하면 하루아침에 대남 비난이 사라질 수 있는 체제다. 그러나 남한은 그렇지 않다. 언론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남쪽 체제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오랫동안 남쪽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우리 정부 또한 합의를 했으면 지키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가장 상징적인 조처는 전단 살포를 막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처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관련 법규를 조금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되고 있는 심리전은 중단시킬 수 있다. 신뢰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북한 정보와 관련된 정부의 책임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왜 국정원이 존재하는가? 사실과 사실이 아닌 정보를 판단해주고, 확인할 수 있는 정보와 확인할 수 없는 첩보를 구분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가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정보기관이 며칠도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판명되는 첩보를 앞장서서 유통시키는 행태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왜 ‘근거 없는 헐뜯기’를 자제해야 하는지 아는가? 바로 ‘정당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다. 남북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할 수 있다. 동서독 관계에서 혹은 과거 미-소 관계에서 인권 의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파기한 북한을 비판할 수 있다. 남북 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위해 북한의 정책 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비판을 하려면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당연히 근거가 있어야 하고, 관계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용기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근거 없는 헐뜯기’와 ‘발전을 위한 비판’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남북관계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이제 우리끼리의 추태를 남에게 보이지 말자.’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 안의 추태부터 돌아보자. 국제사회가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어떻게 평가할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요즘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가? 품격의 귀환을 기다린다. 국내 정치의 품격이 대외정책의 국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락의 말처럼 남들이 보고 있다. 이제 추태를 그만두자.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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