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8 19:20
수정 : 2014.03.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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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경제평론가·CEPR(미국 워싱턴)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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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건강보험에 이어 최저임금 인상과 초과근로수당 확대로까지 전선을 넓혔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조처는 부의 불평등이 소비 부진과 성장 지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상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을 추진하는 미국 정부의 전략이 눈길을 끈다. 입법을 통해 모든 기업이 실시하도록 하기 이전에 정부가 먼저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2월에 발표된 최저임금 관련 대통령령의 요지는 정부가 계약을 맺고 물품이나 서비스를 조달하는 기업들의 경우 2015년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그 기업들이 계약을 맺고 다른 기업으로부터 조달할 때도 이 임금이 적용되도록 했다.
물론 새로운 법을 만든 게 아니므로 민간기업에 높아진 최저임금 지급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수준을 맞추지 않으면 정부에 물건을 팔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최대 규모의 단일 구매자인 정부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실 구매자로서의 정부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일이 많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환경을 보전하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정부가 그런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위탁하는 경우에는 그저 가장 싼 값에 물건을 제공하는 기업을 선택해 계약하는 게 보통이다.
그 기업들은 싼값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임금을 덜 줘야 하고 비정규직을 사용해야 하며 규제를 교묘하게 피하면서 폐기물을 배출하려는 유혹에 맞닥뜨린다. 그렇게 절감한 비용으로 가격을 최대한 깎아야 정부 구매 입찰에서 성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혁신해서 비용을 절감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길이 훨씬 쉬워 보인다.
그러고 나서 정부는 그 과정에서 파괴된 사회적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 다시 세금을 지출한다. 비효율적 악순환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외부효과’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부정적 외부효과가 클수록 나쁜 경제행위가 시장에서 좋은 것처럼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사회는 지속가능성이 낮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최대 구매자로서의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영국의 경우 정부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최저가 대신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최고 가치를 지닌 쪽을 선택하도록 법령과 지침을 만들어두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유럽 2020’ 전략에 맞춰 사회적 가치 중심의 조달지침을 마련해두고 경제·사회·환경적 가치를 균형있게 고려한 조달을 하고 있다.
최근 문재인 의원은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정부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구매자로 행동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반갑다.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정부 구매의 사회책임성 강화 방침도 눈길을 끈다. 이참에 중앙 및 지방정부 구매의 원칙을 최저가 대신 사회적 책임성을 포괄한 최고가치구매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금융사의 투자, 대출, 운용 등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의 영향력은 정부 구매만큼이나 크다. 정부 지분 보유 금융사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행정부와 다른 정치인들도 이런 움직임에 적극적 관심을 가질 만하다.
사람의 인격이 결정적으로 판가름날 때는 지갑 속의 돈을 쓸 때라고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일자리와 환경과 인권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건물 청소 용역업체 선정 때도 그런 가치를 실천하는 기업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원재 경제평론가·CEPR(미국 워싱턴)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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