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9 19:02
수정 : 2014.03.1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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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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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글의 제목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이라 칭했지만, ‘공교육 활성화 및 선행교육 규제를 위한 특별법’의 입법 과정에서 선행학습을 직접 규제하는 내용은 빠지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이 금지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사교육업계가 받을 영향은 거의 없다. 그리고 설령 선행학습 교습행위를 직접 금지했다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학원에 대한 규제도 빠져나갈 구멍이 많고, 개인과외를 통해 이뤄지는 선행학습을 규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법률에 대한 최선의 약칭은 ‘선행교육 유발요인 규제법’이다. 특히 대학을 규제할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입 자율화’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어왔고 그 정점에 이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제 대학이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논술·구술면접 문항을 출제하거나 학교 밖 스펙을 활용하여 선발하는 것이 금지된다. 다만 불안한 점은 이 법률에 처벌 조항이 없고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규제에 기댄다는 점이다. 교육당국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더구나 담당자가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고… 하면?
이 법률의 가장 심각한 결함은 ‘현재의 교육과정은 합리적’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한글 읽기를 4주 만에 해내라는 교육과정,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영어 수준이 확 뛰고 파닉스(Phonics)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교육과정이 과연 합리적인가? 10여년 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가 과거에 비해 어려워지고 분량도 많아졌다고 교사나 학부모나 이구동성이다. 나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학교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교과서 집필에 교사들이 참여하긴 하는데, 다들 ‘누구 교수의 제자’로서 참여하니 주도력이 없다. 결과적으로 구름 위에 계신 분들이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이에 따라 현장 적합성이 떨어지는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중학교는 변별력을 강제하는 내신평가제도 때문에 학교 시험이 엄청나게 어려워졌다.(본란 2013년 6월6일치 ‘박근혜 대통령님, 잘못 알고 계십니다!’ 참조) 이래 놓고도 선행학습 하지 말라고?
가장 걱정되는 건 고등학교다. 국가 교육과정에 수능에 대한 고려가 없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까지 수능 범위 진도를 나가게 되어 있다. 특히 수학이 심각하다. 일반고에서는 여태까지 편법을 동원하여 3년분 진도를 2년 남짓 동안 속진하고 이후 수능 대비 문제풀이를 했다. 최근엔 수능에 반영되는 <교육방송> 교재도 소화해야 하니 더더욱 편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되면 편법이 불가능해지니, 수능 준비를 효과적으로 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자율권을 부여받은 자사고는 얼마든지 고1 때부터 ‘합법적으로’ 속진이 가능하다. 뜻밖에도 이 법률은 일반고에는 족쇄를 채우고, 자사고에는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교육부에서는 고3을 예외로 삼는 시행령을 고려하는 듯하다. 하지만 명색이 다른 법률들에 우선하는 ‘특별법’인데 그런 미봉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려니와, 일반고는 고3에만 과속을 허용하고 자사고는 고1부터 과속을 허용하는 셈이니 이것도 문제다.
세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일반고의 교육과정 편성지침을 재조정하여 수능 준비가 유연하게 가능하도록 하라. 둘째, 유·초·중·고 교육과정 및 평가제도 전체를 ‘구름에서 내려와’ 현장 중심으로 재조정하라. 셋째, 정부의 불안정한 의지에 기대어 대학을 ‘규제’하려 하기보다,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공식 기구를 구성하여 대학이 동의하는 ‘합의’를 이끌어내라.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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