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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3 18:37 수정 : 2014.03.23 18:37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거의 고질병이다. 통합신당 창당을 두고 또다시 중·진 논쟁, 즉 중도·진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왠지 논쟁의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고 참 한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묻는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아서 패배했나? 만약 그렇다면 당시 선거에서 민주당이 진보 어젠다로 제기하려던 대표 정책이나 공약은 무엇이었나? 민주당은 2012년 총선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을, 대선에서는 과거사 논쟁을 주 이슈로 삼았다. 그 결과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졌다. 이런 이슈들이 과연 이전의 ‘보수적’ 민주당이 제기했던 프레임과 다른 진보적 이슈일까? 아니다.

돌이켜 보면 2007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비비케이(BBK) 문제를 중심으로 당시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이슈로 삼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처럼 2011~2012년 이른바 좌클릭을 하기 이전의 민주당도 민주주의에 관한 이슈나 부패 따위의 도덕적 이슈에 대해서는 언제나 강하게 날을 세웠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사회경제적 이슈를 선거 프레임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2010년 지방선거 후 형성된 사상 초유의 복지 프레임에 능동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얻어낸 우위를 2011년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복지라는 진보 어젠다를 버리고 으레 하던 대로 민주 어젠다(민간인 불법사찰)를 다시 꺼내들고 싸운 게 지난 총선이다.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민주당은 대선까지 여전히 민주 프레임에 올인했다.

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진보 어젠다에서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와 차별화하는 데엔 실패했다. 그 결과 선거 의제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아니라 안보나 과거사 논쟁이 되고 말았다. 결국 말과는 달리 정작 선거 때 유권자들이 무엇을 보고 표를 찍어야 할지 눈에 띄는 진보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쉽고 간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정책 쟁점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차별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진보 정치다.

폴 크루그먼은 2009년 <미래를 말하다>(The Conscience of a Liberal)란 책에서 당시 미국 진보의 과제를 의료제도 개혁, 즉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로 정리했다. 올해 있을 예정인 중간선거를 대비한 측면도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내세우는 정책의 핵심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미국진보센터(CAP)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6가지로 딱 부러지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예를 드는 이유는 아무리 거창한 진보라고 할지라도 간명한 정책으로 ‘손에 잡히는’ 구체성을 갖지 못하면 현실에선 허망하기 때문이다. 중도로 가자는 주장도 역시 엉터리다. 왜? 이렇게 물으면 된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너무 진보적이어서 패배했나?

관점을 바꿔야 한다. 정치인들의 생각이나 취향에 따라 진보 또는 중도를 말할 게 아니다. 자신들이 대표하고자 하는 유권자의 이해와 요구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에 필요한 구체적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어떤 사안에선 중도적 해법을, 또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적 해법을 제시하면 그만이다. 이념적 잣대에 따라 모든 사안을 진보 또는 중도로 판별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진보든 중도든 그것을 상징하거나 대표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그를 놓고 논쟁을 벌여야 한다. 지금 통합신당이나 야권에 필요한 건 공허한 이념논쟁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논쟁이다. 뭐라도 구체적인 걸 좀 내놓으면서 논쟁하면 좋겠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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