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26 19:03
수정 : 2014.03.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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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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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9 AM. 서둘러 분당수서고속화도로에 올라타니 분리대 담벼락 위에서 샛노란 개나리 홰가 무성히 쏟아져 내리고 있다. 겨우내 줄기차게 뿜어내던 지역난방공사 거대한 굴뚝에서 연기가 멈췄다. 봄이 오긴 했나 보다.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사…’ 탄천 긴 모래톱에도 부쩍 풀빛이 짙어졌다. 길가 화단에선 마른 덤불을 걷어내는 인부들 손길이 바쁘다. 이들은 일찌감치 하루의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딩동, 딩동, 벌써 여기저기서 문자와 카톡이 부지런히 날아온다. 하루가 시작된 것 맞구나.
08:11 AM 피크타임. 으르렁거리는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다. 전쟁이다. 1차로는 좌회전하려는 차들로 붐비고 3차로는 한결 헐렁하다. 밤새 내린 비에 강물이 불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활짝 갠 아침 햇살에 수면은 마치 수천 수백의 흰 물새들이 날아와 날개를 퍼덕이듯 눈부시게 반짝인다. 멀리 햇살을 등진 잠실대교 교각들은 점점이 잿빛 색조를 입고서 멋진 콘트라스트를 그려내고 있다. 순간 나는 교통체증을 잊는다.
강을 건너 강북강변로에 들어선다. 현수막 나부끼는 영동대교 아래를 지나면 손에 닿을 듯 남산이 성큼 눈앞에 다가선다.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 붉은색 철조와 그 너머 희미하게 비치는 동호대교 교각들, 산자락을 겹겹이 덮은 알록달록 지붕들… 차가 막힌다. 갓길에 고장 난 차 한대가 보닛을 열고 서 있는 것이다. 차 주인은 휴대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다급히 통화를 하고 있다. 분명 보험사나 긴급출동서비스겠지. 직장동료에게 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애가 탈까?
출근하는 사람들 표정에는 어떤 신성하고도 필사적인 결연함이 보인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 출근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린 이런 구호에 길들어 있다. 다른 말로 출근은 곧 생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침마다 전세계 인류는 저마다의 알람을 울리고 일어나 저마다의 일터로 배움터로 출근과 등교를 한다. 이 거대하고 도도한 행진에 우리는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다. 모두 동지다.
08:22 AM. 뚝섬유원지를 지나 동부간선도로에 이어지는 샛길로 접어든다. 강 건너 축대 위엔 높이 솟은 크레인들이 한창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살곶이다리 즈음 내부순환로로 올라탄다. 북북서를 향해 크게 선회하는 공중에 또다른 풍경화가 한 폭 새롭게 내걸린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북한산과 도봉산 어깨자락, 그 한가운데 이마처럼 솟아오른 인수봉 바위봉우리, 거기 한 스푼 크림을 얹듯 흰 구름 한 점이 뭉클 걸쳐 있다.
사근램프 앞에서 차들은 다시 한번 늘어진다. 건너편 용답역 육교 위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등굣길을 재촉하고 있다. 교각 아래 천변 산책로에는 여태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느긋함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집과 사무실을 한곳에 합쳐 재택근무를 하게 된 어느 건축가가 있었다. 1층에 내려가면 집이고 2층에 올라가면 사무실, 그는 오랫동안 꿈꾸던 편한 생활이 마침내 이루어졌다고 기뻐했다. 한데 뚜껑을 열고 보니 막상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집과 일터의 구분이 모호해진 상황은 오히려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방법을 하나 궁리해냈다. 아침이면 일부러 가방을 둘러메고 1층 집을 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2층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근길 코스프레다. 그랬더니 살 것 같더라 한다.
08:30 AM 휴우, 병원 도착. 삶이 아무리 고될지라도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침엔 일어나라. 세수하라. 그리고 밖으로 나가 세상에 용감하게 출근하라.
김현정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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