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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31 18:46 수정 : 2014.03.31 18:46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얼마 전 89살로 세상을 뜬 영국 노동당의 전설 토니 벤은 과거 노동당 정부에서 여러 번 각료를 지냈고, 무려 47년 동안 의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집권당의 각료로 일한 이후 더 급진적이 되었다. 집권을 해서 자신이 각료가 되어도 관료, 기업가, 미디어 등 ‘실질 권력’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고, 선거로 집권한 정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좁다고 봤기 때문이다. 2001년 총선에서 그는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이유는 “‘정치’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 그는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나서는 거리의 정치가가 되었다.

수십년 의원생활과 각료 경험을 가진 관록있는 정치가들이 포진해 있고, 당을 지원하는 막강한 노조와 정치자금 공급원이 있고, 수십개의 싱크탱크와 후원 지식인들이 계속 정책 담론을 생산해내고, 진보적 주류 신문과 공영방송이 있는 영국에서도 현재의 노동당으로는 유럽에서도 가장 심각한 불평등, 실업, 높은 교육비와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새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 노조조직률이 가장 낮은 남유럽 국가들보다 노조조직률이 낮으며 지역 정치 조직도 없고, 싱크탱크는 아예 한 개도 없고, 대다수의 방송 채널이 매일 불리한 보도만 쏟아내고, 주류 보수 신문이 툭하면 색깔시비를 하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한국에서 야당이 도대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선거가 다가왔으니 우선 당을 만들고, 차기 대권 후보의 인기에 기대서 지방선거에서 이겨보고, 대선을 준비하자는 대안밖에 없을까? 그것이야말로 국민들의 불만이라는 반사이익에 기대어 선거에 이겨보겠다는 하루살이 선거 정치, 자신만 ‘가문의 영광’을 누리자는 입신출세 정치 등 ‘낡은 정치’의 전형 아닌가? 더구나 국가기관의 선거부정, 간첩조작 등 중대 범죄와 전면 투쟁하지 않고, 여당의 지방선거 무공천 약속 파기를 비판하지 않으니, 이 정권과 사실 입장이 같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야당을 지지해야 하나?

신당의 두 대표가 통신료 인하, 등록금 문제 ‘민생’ ‘탐방’을 했다고 한다. 그건 10년 전부터 시민단체가 했던 일이다. 국정원이 정치를 하는데, 무슨 민생이 존재하나?

선거라는 것, 정치라는 것은 사회 변화의 과정이자 결과일 따름이고, 정당은 선거에서 대중의 분노와 열망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의회정치의 달인 토니 벤이 밖에서 싸움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무엇을 말해주는가? 막강한 힘을 가진 관료, 기업, 사법부, 언론을 바로잡을 수 있는 노선과 지도력, 정밀한 정책, 대중의 참여와 행동 없이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요행히 집권을 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김대중·김영삼 ‘밑에 들어가서’ 현실정치의 힘에 기대어 변화를 일으키겠다던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밑으로 내려가 지역 정치를 일궜다면 지금쯤은 ‘새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을 것이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좌초의 경험을 냉정하게 복기하여 향후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면 야당이 오늘처럼 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다른 기반이 있을 때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다.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지방선거는 신당의 무덤이 되고, 그 이후에 모든 것이 원점에서 거론될 것 같다. 붕 뜬 구호나 정치공학 대신 ‘실질 권력’을 바꾸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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