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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2 19:09 수정 : 2014.04.02 19:16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꽃 대궐! 세상이 미치니 꽃조차 미쳤다. 집 앞 관악으로 산책을 나서니, 이상 고온으로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길섶엔 개나리 샛노란 꽃들이 띠를 두르고, 마을 뒤편 밭머리엔 매화 향이 그윽한데, 산수유 연노랑 꽃이 코숭이로 가는 오솔길에 흐드러지고, 숲을 돌아보면 뿌리에서 우듬지로 겨우내 길러온 그리움들이 연초록 이파리들로 터진 그 사이사이 연분홍 진달래가 화사하게 웃고 있는데 새소리가 덧칠을 한다. 저 소리, 저 향기, 저 절경을 눈으로, 살로 호흡하면 절로 노래가 나와 물아일체의 흥에 함씬 빠지리요마는, 오늘은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겨우 두보의 <춘망>(春望)과 <덴동어미화전가>의 구절이 떠오른다. “조정은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성안은 봄이 되어 초목이 무성하네/ 시절을 슬퍼하니 꽃조차 눈물 쏟고/ 이별이 한스러워 놀라네 새소리에”(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恨別鳥驚心) 선거부정으로 정권을 찬탈해도 세상은 그대로요, 어느덧 반도엔 봄이 들어 새 잎새들 푸르고, 세 모녀가 그리 자살하고 노동자가 죽어가는 시국을 생각하니 꽃조차 눈물을 흩뿌린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로 가족과 헤어져 거리를 떠도는 자들을 떠올리니 즐거워야 할 새소리에도 가슴이 아프다.

경북의 순흥 비봉산에 화전놀이를 간 영주 아낙들이 불렀던 <덴동어미화전가>의 주인공인 덴동어미의 삶은 세 모녀보다 더 처절하고 기구하다. 첫째 남편은 그네를 타다가 떨어져 죽고, 개가하였으나 시집이 풍비박산하여 남의집살이를 하며 갖은 고생 끝에 돈을 모았으나 남편이 전염병으로 죽고,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셋째 남편 또한 홍수로 죽고, 다시 엿장수와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잘 살지만 엿을 고다가 난 불에 넷째 남편마저 죽고 아들도 화상을 입어 ‘덴동이’가 된다.

그런 그녀가 어찌 “마음심자가 제일이라/ 단단하게 마음을 잡으면/ 꽃은 절로 피는 것이요/ 새는 여사로 우는 것이고/ 달은 늘 밝은 것이요/ 바람은 일상 부는 거라”라고 달관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어찌 ‘왕언니’가 되어 화전놀이를 주도하면서 “호랑나비 범나비야 우리같이 화전하나/ 두나래를 툭툭치며 꽃송이마다 밟고 다니니/ 사람 간 곳에 나비 가고 나비 간 곳에 사람 가니/ 꽃아꽃아 두견화야 네가 참으로 참꽃이다”라며 봄날의 흥취를 즐거이 노래하는가.

덴동어미와 세 모녀의 차이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두레마을의 유무다. 외국인이 한국 문화 가운데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을 물으면, 필자는 석굴암, 한글, 팔만대장경도 그다음이요 첫째는 공동체 문화라고 답하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장 압축적으로 진행된 서울 곳곳에도 골목문화가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다. 아이들은 골목이나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거나 별을 헤었고, 어른들은 먹을거리를 챙겨선 삼삼오오 모여 시국토론에서 자식자랑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꽃을 피웠으며,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막걸리나 과일을 권하였다. 심청을 젖 동냥하듯, 좋은 것이 생기면 나누어 먹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도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마저 앗아갔지만, 당시 시골에는 공동체적 유대와 전통이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두레마을이 곳곳에 있었다. 지금도 이 전통이 남아 있는 마을엔 자살도, 범죄도 없다.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바라볼 별이 있고 손잡고 함께 걸어줄 동무가 있다면 멀고 험한 길을 타박타박 걸을 수 있고,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기댈 언덕, 안길 품 한 뼘만 있다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 누구인가 함께할 때 저 꽃들이 진정으로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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