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9 19:05
수정 : 2014.04.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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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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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벌점으로 학생들을 통제한다. 흡연이나 무단지각, 복장 위반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무례한 언행 및 반항, 교사의 정당한 지도 거부도 3점짜리 벌점이다. 동성 이성 간 부적절한 신체접촉(손잡기, 팔짱, 포옹)도 2점짜리 벌점이다. 학교 안은 교칙이라는 이름의 통제와 규제가 학생들을 옥죄는데 대통령은 학교 밖의 규제나 풀라고, 그래서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교 주변의 모텔과 호텔에도 유흥업소만 없으면 된단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대통령에게는 청소년과 어린이는 안중에 없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뒤 정부는 어린이·청소년, 영세한 상인과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까지 암 덩어리로 규정해버렸다. 그런데 정부가 정상화하겠다는 비정상의 대상과 규제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는 대상들이 어째 진짜 민생과는 거리가 먼 것들뿐이다. 정부가 식품위생법과 자동차관리법의 하위 규정까지 빠르게 고쳐 합법화를 예고한 푸드트럭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한 것 같지만 영세 자영업자, 노점상에 대한 고민은 없다. 오죽하면 푸드트럭 합법화를 제안했던 두리원에프엔에프 배영기 사장조차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시동 걸자마자 시속 100㎞로 달려가려 한다며 걱정을 했을까?
중학생, 초등학생을 둔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는 식당 종업원, 학교식당 조리사로 일을 하다 작년 여름 전세를 빼 식탁 세 개짜리 작은 분식집을 냈다. 분식집을 연 곳은 인천시 구도심에 있는 오래된 재래시장 옆이었다. 소규모 아파트단지와 오래된 서민지역이 공존하는 그곳에는 고기뷔페, 국밥집, 김밥 체인점, 만두 체인점, 치킨집, 중국집, 프랜차이즈 빵집이 모여 있고 튀김과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도 두 대나 있었다. 혼자 일하는 어머니를 돕느라 아이들이 공부방을 빠지거나 학교에 지각하는 일도 잦았지만, 우리의 우려대로 분식집은 몇 달 가지 못해 월세조차 내기 버거워졌고 결국 지난겨울 문을 닫았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힌 이 세 모자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길은 없다. 특별한 병이 없는 40대 엄마는 건강한 근로능력자로 분류되는데다 이혼한 남편은 여전히 두 자녀의 부양 의무자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세 모녀의 죽음 뒤에도, 경제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노인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져도 정부는 부양 의무제를 없애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식집을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그만둔 탓에 자영업자도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 혜택도 받지 못한다. 한부모 가정을 신청한다 해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은 별로 없다.
막막할 때 푸드트럭 소식이 전해지자 어머니의 귀가 번쩍 뜨였다. 아파트 앞에 트럭을 세우고 초밥을 만들어 팔다 망한 청년도, 전철역 앞에서 일본식 문어빵을 만들어 팔던 아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푸드트럭이 영업할 수 있는 곳이 유원시설이나 놀이시설로 한정된다는 말에 맥이 빠졌다. 기존 유원시설에 푸드트럭이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설사 가능했다 해도 고액의 자릿세, 임대료에다 푸드트럭 개조비까지 수천만원을 넘어설 돈을 투자할 만한 청년실업자나 영세자영업자, 노점상들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 자영업자들 중에서 80만명 이상이 1년 안에 도산한다. 우리 동네에도 몇 달에 한 번씩 새 치킨집이 생기고 다시 문을 닫는다. 그런데 푸드트럭 합법화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기업을 위한 규제철폐에만 매달리며 서민들의 고통에는 청맹과니가 되는 이 대통령과 정부 아래서는 서민들의 삶이 나아질 리 없을 것 같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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