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4 18:46
수정 : 2014.04.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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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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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의 대학인 파리대학이나 볼로냐대학은 ‘학생조합’과 ‘교수조합’으로 출발했다. ‘자유도시’가 지적 탐구의 거점이었는데, 대학에는 자유의 공기가 가득했다. 옥스브리지라 일컫는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역시, 학문에 대한 탄압에 대항하기 위해 케임브리지가 옥스퍼드에서 떨어져 나간 사례에서 보이듯, 지적 탐구의 독립성과 세속적 인문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했다.
그러던 대학이 중세의 교권주의 체제를 거쳐 절대왕정기로 이행하자 ‘국가의 대학’이 되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대학은 프로이센 제국 당시에 설립된 베를린 훔볼트대학으로, 이 대학은 그 이후 모든 근대대학의 기원이 되었다. 교수들의 연구중심주의, 학문과 현실의 분리, 부국강병을 위한 실학적 학제 등.
이후의 대학개혁을 이끈 것은 미국인데, 미국 대학의 특징은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개념의 대두와 함께, 전문대학원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개념 때문에 미국 대학의 이사회는 지역사회의 종교인, 기업인, 법조인 등 학문탐구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국가의 대학’은 냉전기에 절대이성인 국가의 요구에 순응했다. 인문학조차 제국주의-식민주의 체제에 봉사해, 포로를 심문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생리학, 점령지의 행정을 위해서는 언어학과 문화인류학, 식민지의 식산흥업을 위해서는 농학과 임학, 행정학 등이 적극적으로 통치형 이론을 생산했다.
머지않아 국가의 대학은 ‘법인의 대학’이 되었다. 오늘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립대학은 서울대학처럼 대학법인이 되었고, 주요 사립대들은 삼성, 대우, 쌍용, 두산 등 기업법인의 소유가 되고 있다. 법인의 대학이 되자 교수들은 연구비 수주를 위한 사업=프로젝트에 골몰했고, 학생들은 대학생활이 마치 4년간의 무급 인턴생활인 듯 분주해졌다.
우리는 왜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가. 예전에야 ‘입신출세주의’ 때문이었지만, 오늘의 대학 진학은 자녀들의 삶이 현재 수준에서 더이상 추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통계와 지표들을 고려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면, 우리의 자녀들이 나와 같은 40대 중반이 되는 시점에는, 오히려 현재를 ‘좋았던 과거’로 추억할 확률이 높다.
대학이란 것 역시 문명화의 산물이고, 따라서 문명의 형태가 변하면 그것의 기능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진정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면, 우리는 지식의 생산과 소통을 위신이나 권력투쟁을 위한 학력자본의 토대로서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을 모색하면서 품위있는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증여’의 관점으로 교육의 목표를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대안교육 실험은 적어도 공동육아로부터 중등교육 단계까지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의 유력한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백개의 제도대학이 있으면서도, 단 하나의 유력한 대안대학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에 대한 권력과 시장의 통제는 물론, 시민 자신들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용기의 부재를 반영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 자신도 참여하고 있는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과 같은 대안적 고등교육 실험들이 더욱 풍부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공동육아로부터 대안대학까지의 일관교육 과정이 일단 체계화된다면, 제도대학과는 다른 ‘학습’과 ‘교육’ 전망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구체화될 수 있다. 협력교육이나 대안사회의 전망이 가령 핀란드의 경우와 같이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상기하고 싶다. 이행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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