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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6 18:48 수정 : 2014.04.16 18:48

이범 교육평론가

대학원 시절 아르바이트로 학원강의를 시작한 게 20년 전이다. 처음 10년간 학원강사로 일했고, 이후에는 사교육업계를 떠나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그러면서 계속 봉사활동 삼아 상담을 했다. 지금도 한달에 두세명씩 아무 감투도 없는, 다양한 지역과 층위의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난다. 나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조언과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이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가장 큰 것은 ‘민생’이 뭔지 어렴풋이 감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20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학교 선생님에게 학업상 상담이나 질문을 하다 보면 “학원에 보내세요” “학습지 안 시키나요?” “학원 선생님한테 물어봐라” 하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믿지 않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똑같은 증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려고, 아무런 감투도 쓰지 않은 보통 교사들을 꾸준히 만나왔다. 작심하고 쓴 글이 <대통령님, 교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본란 2013년 8월1일치)였다. 놀랍게도, 교사들의 정신력과 자존감을 고갈시키는 주범은 입시위주 교육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의 관료적 교육시스템은 교사를 전문가가 아니라 단순노무자로 간주해왔고, 그것이 교사의 정신력과 자존감을 갉아먹어온 가장 큰 요인이었다.

진보와 보수는 모두 무능했다. 양쪽 모두 우리 교육문제의 원인으로 ‘학벌주의와 입시경쟁’을 지목했다. 다만 보수는 학벌과 입시를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고, 진보는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혁신학교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고정관념이 상당부분 틀렸음을 입증한다. 학벌과 입시가 그토록 지배적이라면, 학벌과 입시를 손대지 않고도 혁신학교가 성공한다는 게 가당한 일이겠느냔 말이다.

교사만 불쌍한 게 아니다. 학부모는 어떤가. 대부분의 학부모에게 진보나 보수나 모두 불신의 대상이다.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공교육으로부터 뭔가 도움을 받기가 너무 힘들다. 우리 아이가 뒤처지고 못 따라가면 학교에서 무슨 조치를 취하는가? 아이를 남겨 개별적으로 봐주던 ‘나머지 공부’의 전통은 멸종한 지 오래다. 방학 한 번 지나면 영어 실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학교에서는 최소한의 안내나 지침도 주지 않는다. 아니, 그놈의 “학원에 보내세요”라는 말 대신에 최소한의 신뢰감 있는 조언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스마트폰과 게임에 대해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막막하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불신의 대상이라는 건 억울하다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중에 사교육을 잡는 데 더 효과적이었던 정부는, 이명박 정부다. 객관적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노무현 정부는 특목고 급증을 방치했고 특목고의 갖은 변칙 입시를 허용했다. 현장의 아우성에 대한 교육부총리의 답변은 그저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해 특목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와 자사고로 풍파를 일으켰지만 그 와중에 외고 선발제도를 바로잡았고, <교육방송>(EBS)으로 수능 사교육을 줄였다. 자, 누가 민생을 더 돌본 쪽인가?

최근 전국을 다니며 교육감 후보들의 선거사무실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세상에, 대한민국 교육은 30~40대 아줌마들이 하는 건데, 도대체 ‘아줌마’가 없다. 핵심 멤버들은 거의 다 50대 남자들이다. 이들이 ‘아무 감투도 쓰지 않은’ 보통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를 1년에 몇 명이나 만나볼까? 이래 가지고서야 민생이 제대로 읽힐까? 현실은 시궁창인데!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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