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20 18:49
수정 : 2014.04.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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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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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4월20일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16살 때 학교를 그만둔 뒤 화가가 되고자 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독일로 이주한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하여 두 개의 철십자훈장을 받은 그는 독일의 패전으로 극심한 분노와 배반감에 휩싸인다. 수많은 퇴역 군인들의 좌절감을 바탕으로 나치운동을 시작하여 그 지도자로 5년 형을 선고받고 9개월간 복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유대인을 절멸하고 아리아 인종의 독일을 건설하자는 그의 책 <나의 투쟁>은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고, 그에 힘입어 1932년 대통령선거에 도전한다.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히틀러는 연정의 일부로 총리가 되고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결국 대통령이 된다. 히틀러는 인종주의와 팽창주의를 지속하여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 1939년 폴란드 침공 등 자신의 죽음과 함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인종학살, 반평화, 반인도 범죄를 범한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이자 현 일본 총리는 1954년 9월 야마구치현 나가토에서 태어났다. 세이케이대학을 졸업하고 남가주대에 유학했다가 중퇴하였다. 그의 할아버지 아베 간,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 모두 자민당 정치인이었고,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도조 내각의 일원으로 전범으로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람이다. 아베 신조는 1993년 아버지에 이어 중의원 의원으로 선출된 뒤, 고이즈미 전 총리 아래에서 자민당 간사장이 되고, 2002년 납북 일본인 문제가 터져 나오자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대중의 지지를 굳혔다. 2006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책에서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처벌받은 전범들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서슴없이 주장하더니, 2012년 자민당의 승리로 총리로 복귀한 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다. 또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고노담화를 부인하며 위안부 동원에 일본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게다가 헌법 9조의 집단적 자위권 해석을 변경하여 일본의 전쟁 참가권을 공식화하려 한다. 나아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조하며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하여 중국과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며 전쟁범죄 내용을 교과서에서 대폭 삭제하는 등으로 ‘동아시아의 문제아’로 부상하고 있다.
히틀러가 전후 배상에 신음하던 독일인의 공격적 본능을 일깨운 것처럼, 아베의 최근 행보는 대중의 분노에 기댄 일본 정치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거품경제의 종언 이후 오랫동안 계속된 좌절감, 그리고 도호쿠 대지진으로 부상하는 극우민족주의 등으로 강경한 군국주의 논리가 먹혀들어갈 절묘한 상황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저당 잡히며 진행되는 자민당의 공격적 대외정책은 2차 대전 직전 히틀러가 주도하던 분노의 정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길을 조금도 열지 못하는 보수 일변도 한국 정치의 무능도 이에 한몫하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한-미, 미-일 정상들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동아시아의 비전을 놓고 분노와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희망의 언어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진도 앞바다에서는 실종 학생들의 안위와 관련해 돌파구 없는 울분이 그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 좌절감을 더욱 부채질하는 소식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를 여는 힘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의 손에 놓여 있다. 우리는 희망을 갖고 싶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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